[CoverStory] ‘미국 Down 유럽 Up’ 세계금융 권력이동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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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은 15일(현지시간)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부터 145억 달러를 수혈받았다. 미국 1위 증권사인 메릴린치는 한국투자공사(KIC)와 일본의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등에서 66억 달러를 투자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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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 축이 바뀐다=이런 미국 금융의 ‘굴욕’에 대해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6일 “국제 금융계의 힘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렸고 일본 미즈호 그룹은 90년 부실 채권의 늪에 빠져 있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상전이 벽해가 됐다는 얘기다. WSJ는 이어 “메릴린치에 대한 투자로 한국이 처음으로 ‘빅 리그’(국제투자 분야)에 들어섰다”며 “이는 세계 13번째 경제 대국인 한국의 금융시장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도 16일 “미국의 세계 금융시장 주도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킨지가 최근 내놓은 ‘세계 금융 자산 보고서’를 인용해서다. 이에 따르면 2006년 미국의 금융 자산은 56조1000억 달러, 서유럽은 53조2000억 달러였다. 러시아와 동유럽(3조 달러)까지 합하면 유럽의 ‘뭉칫돈’이 이미 2006년 미국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매킨지의 다이애나 패럴은 “서프프라임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며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의 금융 자산이 이미 미국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했다. 아시아와 중동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 흑자를 기반으로 8조1000억 달러의 금융 자산을 보유해 영국(10조 달러)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국부 펀드와 고유가로 떼돈을 번 중동의 국부 펀드는 한국과 일본에 앞서 월가를 구원하는 큰손으로 나섰다.

미국 금융계에선 이런 외부 자본 수혈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자문사인 그루포 레비사의 매니징 디렉터인 클레어 그루포는 “야구로 치면 9회 중 3~4회가 진행된 것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그만큼 서브프라임 부실의 골이 깊은 것이다.

◆씨티 쇼크, 월가 강타=씨티그룹의 사상 최대 적자로 15일 미국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 모두 전날보다 2% 이상 떨어졌다. 민간 소비도 주춤해졌다. 이날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의 소매 판매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0.4%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소매 판매 증가율도 4.2%로 최근 5년간 가장 낮았다. 미국인들이 소비를 본격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15일 씨티그룹의 신용등급을 셋째로 높은 것(AA)에서 넷째(AA-)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S&P는 “씨티그룹이 앞으로 1~2년 동안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수 있다”며 “지난해 4분기 손실 처리한 181억 달러 이외에 추가 부실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월가 일각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하루속히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9~30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뉴욕 CMC증권의 통화정책 전문가인 아시라프 라이디는 “FRB가 0.5%포인트는 물론 그 이상 금리를 내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FRB는 이날 자금시장의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300억 달러의 단기 자금을 풀었고 30일에도 금융회사들의 신청을 받아 추가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김원배·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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