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관객 무시하며 카메라 돌려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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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며칠 전 부천시향과 국립국악원에서 DVD를 보내왔다. '말러.드보르자크 교향곡 하이라이트'와 '문묘제례악'이다.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 물었더니 공연 실황을 담은 TV 방송용 테이프를 DVD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위성TV 'KBS 코리아' 등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공연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담아둔 영상물이다.

갑자기 공연장 여기 저기에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헤드폰을 끼고 큐시트를 넘기면서 촬영에 열중하는 카메라맨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객석 통로를 지나는 케이블과 카메라 옆에서 공연 내내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의 모습도 스쳐갔다.

디지털 시대에 공연장에 가지 못했더라도 후에 TV나 DVD를 통해 공연을 즐기는 풍토는 당연한 추세다. 하지만 아직 국내 극장에선 공연을 동영상으로 카메라에 담으려면 관객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카메라 자체가 내는 소음은 물론 카메라맨과 중앙 통제실이 주고받는 대화도 귀에 거슬린다.

화재로 소실돼 새로 짓다시피 한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은 1999년 10월 재개관 이후 모든 공연을 DVD에 담아 TV로 방영함은 물론 일반에도 판매하고 있다.

발코니석과 천장, 무대 위 곳곳에 20여 개의 무인 카메라가 설치돼 중앙 통제실의 명령에 따라 좌우 상하로 움직이면서 무대와 객석의 표정을 잡아낸다. 206개의 '음악애호가석'(시야 장애석)에 설치된 액정 화면으로 자막뿐만 아니라 무인 카메라가 생중계하는 무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첨단 공연장이라고 자부하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국내 공연장에 설치된 붙박이 카메라는 로비의 대형 TV로 생중계할 모니터용 한 대뿐이다. 삼각대 위에 설치한 카메라는 박수칠 때 진동 때문에 다소 흔들려 섬세한 영상을 잡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 관객의 통행과 시선을 방해한다.

공연물의 TV 녹화중계와 DVD 제작이 보편화되고 있는 만큼 리세우 극장 같은 붙박이 카메라 설치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미 공사가 끝나버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개.보수 공사를 앞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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