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열도 "공장이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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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공장을 해외로 내보내던 일본 기업들이 본토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개발은 국내, 생산은 해외'라는 전략으로 너도 나도 중국.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옮기던 일본 기업들이 본토로 생산 거점을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쓰시타전기(松下電器).캐논.산요 등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 업체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산업 등 첨단분야의 생산 등 신규 투자는 국내로 돌리고, 기존의 중국.동남아 공장은 조립 등 단순 생산 업무로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 중에 일 본토에 적게는 수억엔에서 많게는 수천억엔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해 생산시설을 신규 내지 증설하는 주요 기업만 100곳이 넘는다.

특수반도체인 시스템 LSI를 생산하는 NEC엘렉트론은 지난해 11월 600억엔을 들여 일 동북지방인 야마가타(山形)현에 공장을 증설했다. 100억엔을 들여 '클린 룸'을 만들고 500억엔은 제조장비에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에 공장이 있는 중국에 증설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국내 투자 쪽이 수지가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화학처리 공정 등 첨단기술이 필요하고 어차피 감가상각 금액이 커지면 인건비의 비율은 떨어지게 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건비가 싼 중국 공장에는 단순 조립을 맡기면 된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NEC엘렉트론은 1000억엔으로 책정된 올해 설비투자액의 거의 대부분을 국내 투자에 투입할 방침이다.

세계 유수의 건설용 기계제조업체인 고마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기 회복과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수요가 크게 늘면서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으면 일본에 짓지 해외에는 안 짓는다"(사카네 마사히로 사장)는 것이다.

사카네 사장은 "중국에서 해봐야 별 이점도 없고 유압기기 등 핵심 관련 기술이 이전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미국 등 7개 나라에 공장이 있지만 장기 침체로 일본의 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연 매출액이 65억엔인 공직기계 제조업체인 소딕 플라스틱은 최근 "수주 물량이 급증하고 있어 9억엔을 들여 이시가와(石川)현에 새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국내 생산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예전에 인건비가 싼 태국 등에서 시험생산을 해봤지만 품질은 그런대로 만족하지만 납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또 주요 제품을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 돼 물류비용이 증가하는 등 총비용이 오히려 일본보다 높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 기업의 '본토 회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즈호증권 우에노 야스야(上野泰也)수석애널리스트는 "원래 일 제조업의 힘은 '개발'과 '제조'가 한 묶음으로 서로 지혜를 내면서 힘을 발휘하는 데서 비롯됐다"며 "기업들이 앞다퉈 국내 쪽에 생산설비를 투입하는 데도 이 같은 배경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 디지털카메라.액정 및 PDP TV.DVD레코더 등 디지털 가전과 반도체 부문의 국내 자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기술력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확보한 일 기업들이 기술 유출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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