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한국인 발레리나 김혜민씨 “원없이 춤출 수 있다면 어디라도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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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슬로베니아 국립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김혜민씨(윗사진)가 지난해 류블랴나에서 열린 ‘돈키호테’ 공연에서 열연하고 있다(아래 사진 맨 오른쪽). [김혜민씨 가족 제공]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에 둘러싸인 중부유럽 국가 슬로베니아. 이 나라 수도 류블랴나의 문화예술센터에선 슬로베니아가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한창이었다. 8일의 일이다. 2부 현대 무용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추는 검은색 긴 생머리의 발레리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동양인이 드문 곳이라 수소문해보니 이 나라의 국립발레단에서 ‘드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한국인 김혜민(23)씨였다. 드미 솔리스트는 발레에서 2인무나 3인무를 소화하는 무용수다. 주연을 맡는 수석 발레리나와 1인무를 주로 추는 솔리스트 다음의 위치다.

공연이 끝난 뒤 시내 카페에서 김씨를 만나 한국인에겐 이름도 생소한 슬로베니아에서 발레리나로 활동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어떻게 슬로베니아 국립 발레단에 들어왔나.

“중학교 때인 10년 전 러시아에 유학했다. 3년 공부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시어터에서 데뷔했다. 1년 뒤에는 발트해 연안국가인 에스토니아로 옮겨 타르투시에 있는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1년을 지냈다. 그러다 2005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상당히 조기 유학인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고향인 부산에서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본 뒤로 무작정 무대에 서고 싶어서 발레를 시작했다. 브니엘 예술중학교를 다니다 본격적인 발레리나 수업을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어머니가 권했다. 이왕 시작한 발레, 원없이 한 번 제대로 해보라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너무도 고맙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았을 텐데.

“러시아어도 제대로 못 배우고 떠난 유학이라 처음에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수업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유색 인종에 배타적인 분위기여서 어린 마음에 상처도 컸다. 유학 초기엔 부모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매일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김씨는 이 말을 하면서 눈가에 언뜻 눈물을 보였다. 스물세 살. 과거를 이야기하기엔 아직도 어린 나이다.)

-악조건을 어떻게 이겨냈나.

“몇 달 지나 러시아어가 귀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온통 발레에 매달렸다.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하는 것도 모자라 밤에는 혼자서 개인연습을 더 했다. 한국에선 접하지 못했던 ‘러시아식’ ‘프랑스식’ 발레를 매일 바꿔가면서 배웠다. 유럽의 다른 학생들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선 끝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슬로베니아 국립발레단원 생활은 어떤가.

“정년이 보장된 슬로베니아의 정식 공무원 신분이다. 급료도 나쁘지 않고, 각종 복지 혜택에 퇴직 뒤에는 연금도 받을 수 있다. “

-러시아·에스토니아·슬로베니아로 옮겨다니며 벌써 10년째 외국 생활인데 힘들지 않나?
“원없이 실컷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라면 몇 나라쯤 더 돌아다니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몸이 춤을 출 수 있는 한 계속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지도자는 아직 생각이 없다. 언제고 현역이고 싶다. ”

류블랴나(슬로베니아)=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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