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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퀴리부인' 키우려면…여성 과학인 활동무대 넓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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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 퀴리 부인(右)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우라늄의 방사능보다 200만 배나 강한 라듐을 발견,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천재 여성 과학자다. 우수한 이공계 여학생들을 지원, 육성해 '한국의 퀴리 부인'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공대 개교 이후 2002년까지 서울대 공대에서 조선 분야를 전공하고 졸업한 사람은 모두 1556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중 여성은? 단 두명이다.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컴퓨터 전공도 2002년까지의 졸업생 925명 중 71명만이 여성이어서 7.68%에 그치고 있다.

이공계 여성인력 활용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공학 쪽에 우수 여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현상을 풀어야 이공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여성과학기술인육성위원회(위원장:과학기술부 차관)가 구성돼 과기부 기초과학인력국과 함께 여성 과학기술인의 육성.지원, 여학생의 이공계 진학.진출 촉진, 여성 과학기술인의 채용목표제 등과 관련한 시행방안을 줄줄이 내놓기 시작했다.

일단 주목을 끄는 것은 여성 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 2001년 9월 25개 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작했다. 2006년까지 새로 채용하는 연구인력의 15%를, 2010년까지는 20%를 여성들로 뽑는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4월부터는 채용목표제가 국공립 연구소 및 정부투자기관 74곳으로 확대됐다.

과기부 기초과학정책과 한형호 과장은 "특히 기계연구원 등 여성 연구원 비중이 아주 작은 공학계열 연구소들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부 출연연구소에서조차 여성의 비율이 낮은 현실이 우수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을 어렵게 만든다는 인식에서다.

2002년 제정된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도 지난해 시행령이 만들어져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이에 의하면 올해까지 과기부뿐 아니라 정통부.환경부.건교부 등 중앙 행정기관과 지방자치 단체들이 여성 과학기술인을 어떻게 육성할지 기본 5개년 계획을 세우게 돼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최근 여학생들이 이공계에 지원할 경우 정원 외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는 파격적인 안까지 마련해 공청회 토론에 부치기도 했다.하지만 학부모회 등에서 "남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을 제기해 일단은 제대로 시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신문주 자문회의 국정과제2조정관은 "할당제는 아니고, 여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뽑는 대학에 연구비 지원 등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공계 대학에 여학생, 특히 공대에 여학생을 늘리는 방안은 과기부와 교육인적자원부도 공통으로 고민 중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서다.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올해 예산은 지난해 83억원보다 2억원 늘어난 85억원에 그치고 있다.

과기부는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30% 이하인 이공계 학과에 대해 30%를 달성하도록 연차적으로 목표를 정해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야 하고, 달성했을 때 지원할 '당근'을 일단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올해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정책연구에 치중키로 했다.

과기부 측은 당초 우수 저널에 논문을 발표한 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우수 여학생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하려 했으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무위로 돌아갔다.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첫 전국 규모 실태조사도 예정돼 있다. 과기부 기초과학정책과 조태섭 사무관은 "이공계 대학.연구소.교수 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얼마나 되고, 이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장 필요한 지원책 등이 무엇인지를 일단 알아야 지원사업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규모 실태조사는 앞으로 매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센터'도 올 하반기에 생긴다. 대졸 이상 여성 과학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상담도 해주는 여성 과학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초등학교.중학교 등 교육현장에서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교육을 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하대 생명화학공학부 최순자 교수는 "보다 많은 공과대 재학 여학생이 현장 실습이나 산학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공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대학과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부도 이런 여론을 의식, 여학생들에게 과학의 재미를 알리는 와이즈(WISE.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지난해 6억8000만원에서 올해에는 9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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