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짱도 수사반장도 '인터넷 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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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 사이에 일명 강도 '얼짱' 으로 불려온 20대 강도 용의자 이 모(22.경주시 안강읍)씨와 공범 김 모(31.경주시 안강읍)씨 등 2명이 23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앞 바닷가에서 수배 1년만에 검거돼 사고 발생지역인 포항북부경찰서로 압송 조사를 받고 있다. [포항=연합]

"인터넷 때문에 모두가 나만 잡으러 오는 것같았어요. 불안해서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경찰청의 수배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강짱(강도 얼짱) 신드롬'을 몰고왔던 이모(22.경북 경주시)씨는 23일 경찰에 검거된 뒤 인터넷을 '원망'했다.

이씨는 애인인 공범 김모(32)씨와 지난해 1월 포항에서 승용차 함께 타기를 가장해 강모(25)씨를 태운 뒤 현금 80만원을 빼앗으면서 특수강도로 수배자 전단에 사진이 올랐다. 둘은 5개월여 동안 전국을 떠돌다 속초시에 원룸을 얻어 정착했다. 이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분식점 종업원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네티즌들에 의해 '강짱'으로 떠오른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어이가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분식집 일도 즉각 그만두고, 가족과의 전화 연락을 위한 외출도 김씨가 도맡았다고 한다. 온종일 방안에 박혀 살았고 불가피한 외출 때는 모자와 평소 착용않던 안경으로 얼굴을 가렸으며, 긴 머리를 묶는 등 인터넷에 알려진 모습과 다르게 보이도록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다.

이씨는 수배 사진의 단정한 모습과 달리 검거 당시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을 정도로 길었다. 그는 "잡히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씨의 인생은 '가출'을 하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경북의 한 4년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보내던 그는 2002년 1월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아 크게 다툰 후 무작정 집을 나갔다. 체육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갈 곳이 마땅찮았던 이씨는 당시 사귀고 있던 공범 김씨를 만나 경주.포항 등지의 여관을 전전하며 낚시와 여행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1학년 여름방학이던 2001년 8월 초 경주시 안강읍의 한 레스토랑에서 김씨를 만났다고 했다.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들렀던 김씨의 끈질긴 구애의 둘은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의 방랑은 1년간 계속됐다. 딸이 돌아오지 않자 이씨의 부모가 대학에 휴학계를 냈다.

이 과정에서 진 빚이 3000여만원에 이르면서 카드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여성들을 상대로 돈을 빼앗기로 공모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10월 안동시 용상동의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를 훔친 뒤 경주시 성동동 시외버스 승강장에서 카풀을 가장해 김모(32)씨를 태운 뒤 반항하는 김씨를 흉기로 찌르고 현금 277만원을 빼앗았다. 이들은 김씨를 정부미 포대에 넣어 인근 산속에 버린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차량을 불태웠다. 같은달 19일과 24일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해 모두 340여만원을 털었다.범행을 위해 승용차와 차량 번호판을 여섯차례나 훔쳤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대구의 한 할인점에서 가족을 만나 300만원을 건네받은 뒤 강원도 동해시로 도피했다. 연고가 없어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대전.공주.전주.군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다 강원도 속초시로 갔다.

여기에서 이씨는 분식점에 종업원으로 취직했고,김씨는 한 불고기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일을 했다.김씨는 '김성민', 이씨는 '강현정'이란 가명을 사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강짱 신드롬'으로 전국이 떠들섞해지면서 바깥 출입조차 어려워졌다. 경찰이 송금내역을 추적하면서 가족들이 보낸 돈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김씨는 수사에 혼선을 일으키기 위해 속초에서 강릉으로가 가족들과 전화를 하고 변두리에 있는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찾았다고 한다.

경찰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생활을 한 김씨가 수사기법을 잘 알고 있었다"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범행과 도피행각을 벌여 검거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씨의 어머니가 딸을 만나러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경주에서 속초까지 뒤를 밟은 경찰에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지난 23일 오후 9시.경찰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 앞 해변 포장마차촌에서 주민.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투 끝에 이들을 검거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강도 얼짱이다"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순식간에 50여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강짱 신드롬'때문에 이들이 더욱 꼭곡 숨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얼굴이 알려졌는데도 제보 한 건 없었어요."

수사반의 김용철 반장도 이씨 만큼 인터넷을 원망했다.

포항=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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