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 국제대회 첫 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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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왼쪽부터 강광배·김정수·이진희·조인호)이 사상 처음 따낸 국제대회 메달을 목에 건 채 기뻐하고 있다. [한국선수단 제공]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자메이카 육상선수들은 단거리 출신이 봅슬레이에 강하다는 얘길 듣고 종목을 바꿔 겨울올림픽에 도전한다. 천신만고 끝에 출전한 캘거리 겨울올림픽. 이들은 활주 도중 멈춰선 봅슬레이를 끌고 결승점을 통과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는다(영화 ‘쿨러닝’의 줄거리다).

 한국 봅슬레이팀의 출발은 ‘쿨러닝’의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흘린 땀은 마침내 ‘국제대회 첫 메달’이라는 열매가 됐다. 목표인 올림픽 출전도 멀고 먼 꿈만은 아니다.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35·강원도청) 감독이 이끄는 봅슬레이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인근 파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대회 4인승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1, 2차 시기 합계 1분39초23을 기록, 캐나다(1분37초22)와 미국(1분38초43)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한국은 2인승에 이어 4인승에서도 국가랭킹 18위에 올라 다음 달 세계선수권(독일 알텐베르크)과 다음 시즌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월드컵시리즈 출전권을 얻었다.

 장비가 없어 12일 2인승 종목에서 ‘USA’라고 찍힌 봅슬레이를 500달러에 빌렸던 한국은 4인승 경기에서도 주최 측으로부터 같은 값에 봅슬레이를 빌렸다. 이날 빌린 봅슬레이 옆면에는 ‘SALT LAKE 2002’라고 찍혀 있었다.

봅슬레이만 빌린 게 아니다. 대표선수 중 봅슬레이 전문은 드라이버 강광배와 브레이크맨 이진희(강릉대) 두 명뿐. 4인승 출전을 위해 스켈레턴(엎드려 타는 종목) 전문인 조인호·김정수(이상 강원도청)도 빌렸다. 둘은 출발 때 썰매를 미는 ‘푸셔’로 나섰다. 강 감독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목표로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캐나다 캘거리로 건너가 15일 개막하는 아메리카컵 3, 4차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대회가 끝나는 20일께 유럽컵 여자대회가 열리는 독일 비텐베르크로 이동, 세계선수권을 준비할 예정이다. 여자 대회지로 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회에는 나가지 않지만 대회기간 중 장비·시설을 저렴하게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현실의 또 다른 장면이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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