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분노의 소용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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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박영훈 9단(한국) ●·구 리 9단(중국)

장면도(177~189)=어떤 변명을 해도 ‘내 잘못’이다. 그 무거운 자책감 속에서 정신을 차려 간신히 불을 껐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빈삼각의 묘수(백△)를 당했다. 이 수는 A의 연결과 B로부터 C로 넘는 기사회생의 퇴로를 동시에 만들어냈다. D의 곳은 항상 선수였건만 왜 이곳을 아끼다가 이런 참변을 당한단 말인가. 구리 9단의 가슴은 다시 맹렬한 분노로 불타오른다.

177로 사납게 젖혔다. A의 연결을 차단하는 수. 그리고 백의 준동에 조금이라도 제약을 가해보려는 수. 그렇다. 177은 ‘방어와 수습’이란 본질에서는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혼란과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슬며시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구리는 까마득히 몰랐다. 177은 ‘참고도’ 흑1에 두어도 어차피 패다. 결과가 똑같다면 자기 집을 메운 177보다 두 집은 이득이다. 이 두 집만 있었다면 구리는 잠시 후 ‘반집’이라는 보물을 찾아 발이 부르트도록 황야를 헤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178, 180은 예정 코스. 181로 따내 패가 됐다. 186 쪽으로 계속 몰고가 백돌이 B까지 놓인다면 드디어 C의 개미구멍으로 감쪽같이 연결된다. 하나 백에도 눈에 띄는 팻감은 182 하나뿐이다. 박영훈 9단은 188에 패를 썼고, 구리는 즉각 189로 불청했다. 188의 패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184·187은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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