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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 150억으로 후손 먹고살거리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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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성호 이장(앞)과 주민들이 10일 대도섬 선착장에서 용왕님께 제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짚단 속에 돈과 음식을 넣어 돌과 함께 바다에 던지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사해(四海) 용왕님께 비나이다. 대도섬을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해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 앞바다를 품고 있는 경남 하동군 금남면 대도섬 선착장에선 10일 특이한 제사가 열렸다. 돼지머리와 음식이 차려진 제상 앞에 마을 주민 60여 명과 함께 선 이성호(61) 이장은 “섬이 관광휴양지가 되게 해달라”는 제문을 읽었다.

 20분간의 제사를 마친 주민들은 곧바로 마을회관으로 옮겨 회의에 들어갔다. 마을어장 소멸보상금 150억원을 대도섬의 관광지 개발에 투자하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4년째 끌어 온 마을의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도섬은 올해부터 총 사업비 520억원이 투자돼 2012년까지 해양휴양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국고 지원 71%) 중 약 29%인 150억원은 주민들이 부담하는 조건이다. 57가구가 사는 마을이니 가구당 2억6000여만원씩 돌아가는 돈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회의에 참석한 최고령자 이순덕(85) 할머니는 “돈은 갖고 있으면 써 버린다고. 어업보상금 받은 이웃 섬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사업하다가 모두 알거지가 돼 다시 섬으로 돌아왔잖아. 이제 마음이 편해”라고 말했다.

 대도섬 주민들은 마을 개펄에서 굴·바지락·낙지·새조개를 캐며 평화롭게 살아왔다. 2001년 7월 하동화력발전소가 준공되기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발전소가 들어서자 마을어장은 점차 황폐화돼 갔다. 그러던 2004년 말, 마을 앞으로 어업권 소멸보상금 150억원이 떨어졌다.

 60∼70대 노인들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끼라꼬. 돈을 나눠달라”며 개발 계획에 주저했다. 하지만 40~50대 중심의 장년층은 “마을이 먹고살 길을 찾자”며 팽팽히 맞섰다.

 이듬해 주민대표 13명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민 의견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지난해까지 해마다 20여 차례의 전체 마을회의를 열어 이견을 좁혀갔다. 삼성 산청연수원에서 워크숍을 열었고, 일본의 유명 휴양단지와 거제 외도·마산 돝섬·용인 에버랜드도 견학했다.

주민들이 큰돈을 포기한 데는 이 섬이 ‘장수(長水) 이씨’ 집성촌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원식(54) 운영위원장은 “마을 총회 때 반대하는 어른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촌수를 따지는 친척 간이라 설득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57가구 중 이 위원장의 사위가 사는 한 집만 빼고 모두 한 문중이었다.

글=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대도섬=남해대교 옆에 있는 면적 0.46㎢에 57가구 160명이 사는 작은 섬. 무인도였으나 1690년 남해 출신 장수 이씨 부부가 옮겨오면서 집성촌이 됐다. 인구분포는 70대 이상이 절반이다. 50∼60대는 30%, 20∼40대는 2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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