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芮乃偉우승 복병 豊雲제쳐 상금70%는 中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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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제1회보해컵 세계여자바둑 선수권대회」에서 풍운을 일으키며 결승에 올랐던 중국 여성바둑계의 신데렐라 펑윈(豊雲)7단이 마녀(魔女)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최강이며 역시 중국대표로 출전한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과 3번승부를 벌여 준우승에 그친 것(1승2패).
『豊7단은 결코 芮9단의 적수가 못된다.일방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바둑계의 예상과 달리『내 어찌 일생일대의 호기를놓칠까 보냐』는 결의인듯 豊7단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왔다.
마녀의 요술지팡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자신의 페이 스로 이끈 끝에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실로 믿기지 않는 1국의 결과에 세상사람들이 경악했음은 물론이다.豊7단이 겁없이 잘 싸운 반면 芮9단은『꼭 우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작용 탓으로 잔뜩 경직되어 자신의 바둑을 두지못했다.「큰 승부」일수록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건만 芮9단은 그러지 못했다.
『곡 이겨요.』문득 93년 5월 싱가포르에서의 일이 떠오른다.「꼭」을「곡」으로 잘못 쓴 한글 쪽지를 건네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과「제2기 응씨배(應氏盃)」를 다투는 서봉수9단을감격시켰던 芮9단이 이번에는 자신이「곡 이겨야만 하 는 입장」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芮9단은 93년 우칭위안(吳淸源)9단의 제자로 입문했다.9단이 되어 뒤늦게 남의 제자로 입문한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그것은계보를 중요시하는 중국적 모양갖춤이요,의미심장한 수순이었다.吳9단은 바둑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기사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전세계 바둑팬들로부터「살아있는 기성(棋聖)」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그의 제자를 중국정부인들 어찌 함부로 대하겠는가.
결국 芮9단의 중국왕래가 슬그머니 허용되었으며 대표로 기용하기에 이르렀다.하지만 「속사정」은 여전히 껄끄러운 상태다.보해컵의 우승상금 3만달러(韓中간 조세협정 체결로 세금공제 없음)도 70%는 국가(바둑협회)에 바치고 나머지 30 %만 芮9단몫이 된다.중국바둑협회 규정을 준수한다는 조건부 기용이었던 것. 사실 芮9단은 자신의 모국으로부터 홀대 받지 않고 필요한 존재로 남기 위해서라도 1인자의 위치를 고수해야만 할 절박한 처지다.상금의 과다한 공제는 그 다음 문제다.
한편 豊7단은 2국에서도 크게 우세했으나 우승에의 욕심이 심안(心眼)을 가려 결정타를 날릴 고비마다 지나친 몸조심으로 후퇴를 거듭,한판을 내주었으며 3국에서도 역시 같은 내용으로 역전패당해 아쉬움을 남겼다.
豊7단은 3국때 2국과 똑같은 포석을 펼쳤고 芮9단도 고집스럽게 복기하듯 따라 둠으로써 36수까지가 2국의 재판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芮9단으로서는 토출용궁(兎出龍宮)의 간담 서늘한 한판한판이었다.따지고 보면 豊7단은 자기 자신에게 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서 바둑을「외로운 자기투쟁」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승해본 사람이 우승한다』는 승부세계의 통설이 이번에도 적중한 셈이다.
중국바둑,특히 여성프로바둑은 상하이(上海)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중국팀의 芮9단.양후이(楊暉)8단.예진진(葉錦錦)3단이 모두 상하이 출신이며,豊7단만 유일하게 랴오닝(遼寧)사람이라는점도 특기사항 중 하나다.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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