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진단>인간중시 교육제도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95학년도 전기대학 합격자 발표가 끝났다.합격한 수험생은 그동안 「고생」한 대가를 보상받은듯 기뻐하고 낙방한 학생은 후기대 또는 전문대를 기약하며 풀죽어 있다.수험생과 가족,주변 사람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 된 「입시 몸살」을 앓고 있다.
과잉 교육열과 오도된 학력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입시 몸살은 쉽게 치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새 대학입시제도가 도입된지 2년째.올해는 특차 전형을 하는대학과 모집인원도 늘었고 4년제 대학.개방대.전문대등의 정원도많이 증원돼 수학능력시험 지원자의 72%이상인 56만여명이 각종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한다.
그러나 24만명 정도는 진학을 아예 포기하거나 낙방의 쓴잔을마시고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비진학자나 낙방생들이 마땅한 진로를 찾기가 무척 힘든 우리 사회의 현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입시 실패라는 경험 때문에 심한 좌절감이나 정서 불안으로 방황한다는 것이다.
입시경쟁 실패라는 마음의 멍울이 이들의 진로 결정에 불필요한시간적.심리적 낭비를 초래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입시선발제도는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낙오자를 배출해왔다.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다수의 학생들이 들러리를서고 또 모욕과 수치를 감수해야 한다.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그 심리적 위축감은 사회생활과 생산활동까지 영향을 미치게된다.또 학력과 학벌로 짜여진 한국의 사회구조는 이들의 직업선택과 직위상승을 가로막는다.
제2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입시가 인생의 장래를 결정하는 상황아래에서 학부모들 또한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정서를 갖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일류학교를 나와야만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는 교육의 효과를 알면서 어느 부모 가 그같이 행동하지 않겠는가.
학생과 부모들에게 강박관념을 초래하는 입시제도는 개인의 성장.가족관계.사회관계를 해치는 가장 중요한 국가적 병리현상의 요인이 된다.
학생들은 학우들과의 경쟁,부모의 간섭,교사의 눈치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쫓긴다.눈에 안보이는 입시제도라는 망령에 시달리는 것이다.이런 과정에서 입시의 승자에게는 사회지위와 명예가,패자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비인간적 제도조 차 당연시 여긴다.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높은 교육열은 「반교육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이런 개인에 대한 교육의 「반인권적」제도와 횡포를 의식.무의식적으로 합리화하고 그에 익숙해 있다.
한 사회의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교육제도가 얼마나 개개인의 요구에 맞게 조직돼 있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선발해 다수의학생을 직업세계로 안내하느냐는 것이다.
개개인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처럼 학생에게 실패라는 딱지를 붙여 산업 인력으로 유도하기 보다 심리적으로 건전한 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마련해야 한다.이제 소수의 엘리트 배출의 시대는 지났다.모든 분야에서 개 성과 능력을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인력들이 길러져야한다.따라서 이제 입시선발제도와 학교교육도 지난날의 「비인간적」인 경향을 탈피해야 한다. 이같은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새롭게 정비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미래에 져야할 사회적 책임이다.교육기회의 균등성이 보장되고 학생들의 적성.능력.노력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도록 융통성있고 다양한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무작정 교육열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시되는 교육제도의 개선을 통해 학부모.교사들을 바른 교육열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이 방향이 우리 교육개혁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