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책읽기] 클래식 음악을 통해 본 20세기 문화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알렉스 로스1968 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까지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유럽사와 영문학, 그리고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92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음악에 관한 글을 썼으며 96년부터 현재까지 뉴요커지의 음악평론 고정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는 소음일 뿐』은 그의 첫 저서.

21세기가 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영미 독서계에는 20세기에 관한 문화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의 화제작은 알렉스 로스의 『나머지는 소음일 뿐』이다. 여러 매체가 2007년 최고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한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의 변화양상을 통해 20세기를 읽어낸다. 과거의 음악사가 주로 음악 자체의 발전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정치·경제·문화는 물론 음악가 개인사까지 함께 아우르는 관점을 유지한다. 음악사인 동시에 문화사로도 읽힌다.

저자는 음악이 20세기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음악이 역사를 만들어낸 과정, 음악 없이는 불가능한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전문적인 음악 분석이 만만치 않은데도 재미있는 이야기 같이 읽히는 것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도 큰 어려움 없이 20세기 문화사를 음악적 관점에서 읽어갈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햄릿이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내뱉은 대사, “그 외 나머지는 침묵”이라는 구절을 비틀어서 “나머지는 소음”이라고 한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듯한 시대 흐름에 대한 재치 있는 비판이다.

클래식 음악은 과연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현대미술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피카소나 잭슨 폴록의 작품이 지금에 와서 수백 억원씩 호가하는 것을 보면 20세기 미술은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하면 현대 음악은 많은 작품들이 여전히 불편한 소음이거나 아직도 논란의 와중에 있다.

The Rest is Noise: Listening to the Twentieth Century (나머지는 소음일 뿐: 음악으로 듣는 20세기) Alex Ross 지음, Farrar Straus and Giroux 사 640쪽, 30달러

20세기 초반에 새로운 음악의 도래를 알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아직도 일반 대중의 애청곡이 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20세기 음악사의 혁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은 거의 잊혀져 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힙합 음악은 부모들에게 소음에 불과할 수 있고 부모들이 듣고 있는 교향곡은 아이들의 귀에 지루한 센티멘탈리즘일 수 있다. 저자에 따르자면 우리가 도달한 현재의 세계상이 음악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저자가 파악한 20세기 고전음악은 한편으로는 엘리티즘에 빠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주의에 굴복했다. 엘리티즘은 부유층과 권력의 비호 아래 성장했고 대중주의는 녹음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라디오·영화 등의 대중매체 보급에 영합한 결과이다. 음악이 순수한 것 같지만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것도 지적해두어야 한다. 20세기 전반의 유럽 음악은 히틀러나 스탈린에 봉사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경우에도 클래식 음악을 포함한 실험 예술 전반이 냉전기 미소간의 체제경쟁 도구로 이용된 사실을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저자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유례없이 높여 놓았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에 더 이상 위계는 없다. 비틀즈에서 시작된 장르간 혼합 실험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무조음악 수용까지 확대되었고 문제는 그것이 음악인가 아니면 소음인가이다.

존 케이지의 말이 저자의 입장을 잘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듣는 것의 대부분은 소음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무시하면 그것들은 우리를 방해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라. 그 소음들이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영준<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