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방패’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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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0일 기업이 안정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영권 보호 관련 규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관계자는 “외국 자본으로부터의 적대적 M&A 위협은 늘고 있지만 경영권 방어장치가 미흡해 포이즌필·복수의결권·황금주 등 방어장치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면 상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재경부와 법무부에 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기업인이 마음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자 재계의 숙원사항이다.

지난해 6월 상법 개정 때 재계는 M&A 방어장치 도입을 건의했지만 재경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주주 평등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인수위의 지시를 받고 재경부도 재검토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에너지·통신·방송 같은 국가 기간사업의 경영권 보호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황금주·포이즌필을 도입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기업에 대해서도 적용 대상과 기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1988년 ‘엑손-플로리오법’을 제정해 에너지·통신 등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의 M&A를 정부 직권으로 막을 수 있도록 했다. 미국 500대 기업의 94%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와 상법 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최근 350여 개 상장사가 포이즌필을 도입했다. 유럽 국가도 황금주·복수의결권 등 방어장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장치가 마땅치 않아 KT&G·SK 등이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시달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외국인 지분이 국내 최대주주 지분보다 많은 곳이 17개 사에 달해 적대적 M&A에 노출돼 있다.

 국내 기업은 자사주 매입 외에 별다른 방어장치가 없어 자사주 매입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공장을 짓는 데 들어가야 할 돈이 M&A 방어비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포이즌필(Poison Pill)=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독소 조항. 적대적 M&A 위협을 받는 기업의 주주들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시가보다 싸게 신주를 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또 적대적 M&A로 경영진이 임기 전에 물러날 경우 거액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복수의결권=주식의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제도. 주식에 따라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주는 것이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황금주=한 주라도 이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주총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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