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세계화와 자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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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화 전략에 대비해 규제완화.자율화를 기조로 하는 국가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체안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산업투자의 자율화,대학운영의 자율화,정부조직의 분권화(分權化),외환제도의 자율화.가위 자율화 유 행의 시대에접어든 느낌이다.대세는 바람직한 것이며,21세기 무한경쟁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획일적으로 추진하기전에 잠시 짚어볼 사항들이 있다.
게임이론중에 「죄수들의 고민(Prisoners' Dilemma)」이라는 문제가 있다.용의자로 두사람이 검거되었는데 만일 두사람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면 간단한 벌금형에 처해지고,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우기면 6개월씩의 형을 받는다 .다만,한사람은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우기는데 다른 한사람은 묵비권을 행사하면 묵비권을 행사한 사람이 범인으로 간주돼 1년형을 받고,다른 사람은 그대로 석방된다는 것이다.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이 결국 상대방을 범인이라고 지목해 6개월씩 의 형을 받는 것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21세기 사회를 기술.정보.지식과 환경의 시대라일컫는다.그러나 이들은 무임승차(無賃乘車)적 특성들이 강해 서로가 도움이 되는 공동체적 선택보다는 「죄수들의 고민」에서와 같이 개인주의적 선택에 편향될 가능성이 과거 어 느때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고있다.이러한 사회를 필자는 「오목형 사회」라 칭한다.이러한 사회에서의 자율화 추진은 자유방임적이어서는 곤란하다.자칫 집단이기주의적.천민자본주의적 혼돈으로 이어질 수 있기때문이다.물론 자유방임은 항시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가더욱 심화될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오목형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자율화란 무엇인가.우선 진정한 의미의 자율화는 완전한 규제 철폐를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기존의 직접규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규제의 개념 자체가 바 뀌어야 한다는것이다.진정한 자율화는 개인적인 선택을 공동체적 선택으로,자생적으로 끌어 올릴 동기 부여를 제공하고,「자율에 따른 책임」과「결과에 대한 평가」를 수반하는 게임 룰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소위 말하는 동기 부 여형 간접규제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전환의 총론적 필요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진전이 없는 것은 게임 룰에 대한 구체적 감각의 결여에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게임 룰의 좋은 예로 최근 도입된 쓰레기 종량제를 들수 있다.공인된 규격쓰레기봉투를 이용해야 한다는 게임 룰을 지키는 한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직접규제와는 다르다.자유방임적 자율화도 물론 아니다.시행상의 보완점이 있기는 하나,그 효과와 호응도 면에서 성공이라고 본다.사회 모든 부문에서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창안해 낼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일반시민들에게 필요한 개혁은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설정된게임 룰을 존중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는 준법적 시민의식을 갖추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이다.그리고 지키면 손해를 보고,안지키면 이득을 보게되는 직접규제형 사회에서와는 달리,지키면 본인과 공동체에 모두 도움이 되는「동기 부여형 게임 룰」의 사회에서는 시민의식과 준법정신은 비교적 용이하게 정착될 수 있다.이번 쓰레기 종량제에 대한 호응도 가 높은 것이 좋은 예가 아닌가. ***간접규제型사회 지향 다가오는 시대에는 당연히 직접규제적 국가경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그리고 세계화.개방화에 편승한 자유방임적 패러다임은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그렇다고 동양적 미덕과 가치관의 개혁을 통한 공동체적 선택을 호소하는 총론적 캠페인에 만 의존하기도 어렵다.21세기의 오목화 사회에서는 동기 부여를 전제로 하는 게임 룰을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으로 하고,이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48세▲서울大 기계공학과졸▲美스탠퍼드大 경영과학박사▲과학기술원 교수▲「한국 반도체산업의 성장과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전략」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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