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감독 심정을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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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여자배구 현대건설이 KT&G에 0-3으로 진 8일. 경기 뒤 수원실내체육관 인터뷰룸에 들어서는 홍성진 현대건설 감독의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제가 원래 다혈질이라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열이 올라서 눈에 실핏줄이 모두 터졌고 얼굴에도 열꽃이 피었습니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현대건설은 이날 패배로 올 시즌 9전 전패다. 개막 전부터 약체로 분류됐다고는 해도, 여자 최고 연봉자(1억2000만원) 한유미, 2007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한수지, 최장신 외국인 선수 티파니(1m93㎝) 등이 있어 내심 선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믿었던 외국인 선수와 세터가 제 몫을 못해 주는 바람에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홍 감독은 탈이 난 것이다.

이희완 GS칼텍스 감독도 최근 스트레스에 따른 위궤양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KOVO(한국배구연맹)컵에서 우승, 올 시즌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9일 현재 4승5패로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감독은 6일부터 지휘봉을 이성희 코치에게 임시로 맡기고 집에서 쉬고 있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감독들은 피가 마른다. 2001년 시즌 중 심장마비로 숨진 김명성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케이스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감독들은 하나같이 두통·불면증·식욕 부진에 시달린다. 지난해 프로농구 KCC의 허재 감독처럼 한 시즌을 치르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흰머리가 늘어난 경우도 있고, 탈모증에 시달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여자농구 6개 팀 중 4위에 밀려 있는 최병식 국민은행 감독은 “두통은 항상 달고 다니고, 시즌 시작 두 달 반 만에 체중이 6㎏이나 빠졌다”고 푸념했다.

최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충희 전 감독 대신 오리온스 지휘봉을 잡은 김상식 감독대행은 “신경이 곤두서 밥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성적이 좋은 감독은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넘어갈까. 여자부 선두인 KT&G 박삼룡 감독은 “이기는 감독도 마찬가지다. 감독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스트레스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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