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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변화 부르짖는 수백만 목소리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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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일 밤 버락 오바마(민주) 상원의원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뒤풀이 행사가 열린 내슈아시 고교 체육관. 승리를 자신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연호하며 입장한 2000여 지지자는 오후 8시 시작된 개표 방송에서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뒤진 것으로 나타나자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설마”하는 눈빛으로 TV 화면을 응시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벌어지자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오후 10시40분. AP통신이 힐러리의 승리를 예측한 직후 오바마가 부인 미셸과 함께 나타났다.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맞았다. 오바마는 “힐러리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패배를 시인한 뒤 “그러나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런 큰 성과를 거두리라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투는 오래가겠지만 ‘변화’를 부르짖는 수백만의 목소리가 있는 한 어떤 것도 우리 앞길에 장애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쳤다. 청중은 “우린 변화를 원한다” “오바마, 오바마”를 연호했다.

셔먼 소빈슨(25)은 “솔직히 실망했다. 특히 여론조사가 사람들을 오도해 힐러리 지지자들만 불러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원래 힐러리 조직이 강한 뉴햄프셔에서 한참 뒤졌던 오바마가 간발의 차로 2위를 한 건 결국 그가 승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닐리아 미셸(15)도 “그의 연설은 낙심한 지지자들을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며 “오바마는 패배에 개의치 말고 같은 메시지를 계속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바마를 여전히 지지하지만 그가 최종 승리를 할지는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오바마의 예상 밖 패배 원인은 우선 힐러리가 남편 클린턴 대통령 집권 이래 뉴햄프셔에 구축해 온 네트워크에 필적할 조직 마련에 실패한 때문으로 지적된다.

자원봉사자는 많았지만 외지 출신이 상당수이고, 힐러리를 압도한 유세장 인파도 다른 주 거주자들이 많아 거품이 컸다는 것이다. 또 젊은 층에 치중한 유세전략이 힐러리를 지지하는 30대 이상 여성들의 결집을 초래한 게 치명타로 작용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분석했다. 또 힐러리가 막판에 유권자와의 대화를 늘리고, 울먹이는 모습까지 보이며 달라진 면모를 선보인 반면 오바마는 시종 ‘변화’를 강조하는 연설만 반복한 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8일 콩코드시 6선거구에서 힐러리를 찍은 40대 여성 린다(사서)는 “오바마가 신선하긴 했지만 난 생활인이고 나이가 있어 막상 찍자니 용기가 안 났다”고 말했다.

잔뜩 기대했던 뉴햄프셔를 놓친 오바마는 판세가 사실상 결정되는 2월 초까지 여러 주에서 힐러리와 혈투를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19일 네바다와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힐러리를 누르는 게 급선무다. 이어 22개 주에서 경선이 열릴 2월 5일 수퍼 화요일 이전에 이들 주에서 조직을 완비해야 한다. 최소한 3개 주는 아직 오바마의 조직이 없다.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는 흑인이 인구의 절반으로 남부 표심을 좌우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를 노려 왔다”며 “그러나 흑인 지지층이 많은 힐러리의 뉴햄프셔 신승으로 이곳도 승리를 낙관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내슈아(뉴햄프셔)=강찬호 특파원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당원은 물론 당적이 없는 일반인도 민주·공화 양당 중 하나를 택일해 투표할 수 있는 반폐쇄형(semi-closed) 프라이머리다. 이번에 민주당의 경우 당원 표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일반인 표는 버락 오바마에게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득표율은 힐러리 39%, 오바마 37%로 힐러리가 근소한 차로 앞섰다. 그러나 승자 독식 방식이 아니라 득표율에 따라 대의원을 나눠 주기 때문에 두 후보에게 배정된 대의원 수는 9명으로 같았다.

◆코커스(caucus)와 프라이머리(primary)=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는 대의원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대의원을 뽑는 방식은 두 가지인데 코커스(당원대회)와 프라이머리(예비선거)다. 코커스는 당일 저녁 당원들이 학교·교회나 큰 강당에 모여 후보자별로 공개적인 지지 그룹을 형성하고, 그 숫자에 따라 대의원 수를 결정한다.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일반 유권자가 모두 참여하는 비밀투표를 통해 대의원을 뽑는다. 미국 전역에서 코커스는 아이오와주가 가장 먼저, 프라이머리는 뉴햄프셔주가 가장 먼저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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