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저자는말한다>크리스토퍼 래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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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구사회의 엘리트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또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일탈해 있다.그들에게는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자신들만의 안전을 위해 사설보안요원을고용하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이처럼 엘리트들이 일상생활에서 「고립」을 자초해 대중과 따로 노는 바람에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이 크게 변질되고 있다.여기에 중산층의 쇠퇴와 공통가치관의 결여가 맞물려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비효율적인 사회구조와 부패의 확산,생산성의 저하,제조업을 외면하고 투기적인 이익만 추구하려는 풍조,일부 도시지역의 열악한생활환경,빈부격차의 심화등 미국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은 이제 더이상 덮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런 현상 은 도덕적으로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떠나서 정치적으로도 폭발직전이어서 그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비록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델로 통할지라도 사회의 불균형을 치유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나아갈 경우 머지않아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2백년 전 건국 당시의 이상이 왜 이처럼 타락하고 말았는가.
그 원인은 사회를 선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학자들의 은둔자적인자세,지나치게 타협적인 사고방식,시민생활의 부패에 있다고 본다.그 결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과 아울 러 정치토론장에서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던 건국초기의 미덕을 배반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현재 미국사회에는 이중구조가 고착되고 있다.한쪽에는 소수의 관리자계층이 경제의 세계화붐을 타고 고임금직종에 진출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값비싼 교육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부를 물려주고 있다.그런 반면 나머지 대다수의 주민들은 비 천한 직종을놓고 서로 경쟁해 첨단정보시대에 노예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사회를 잘못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로 19세기에 미국공립학교제도를 창안했던 호리스 맨을 들 수 있다.그가 교육의 목표를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소극적인 인간상에 맞추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지금처럼 공허한 목소리만 높아지게 된 것 이다.
〈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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