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신비>1.벌의 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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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마리의 작은 벌레에서 몸무게가 수십t이나 나가는 고래까지,그 행동 하나하나에는 모두 오묘한 섭리가 깃들여 있다.어떤 동물들은 듣고 보는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며 또 다른 동물들은 인간 이상으로 가족간에의 진한 사랑을 나눈다.
인간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같은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동물사회행동학자인 박시룡(朴是龍)교수의 글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註] 학습한다는 의미에 있어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없다.벌과 같이 단순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는 수명이 짧은 동물마저도 신경계가 학습이라는 과제를 갖고 변화하는 주변상황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벌들은 생애동안 필요로 하는 극소수의 정보를 뇌에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예를 들어 주변의 경치,태양의 위치,그리고 특정 꽃에서 꿀이 생산되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벌들은 학습을 통해 뇌에 저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뇌와의 차이는 뇌세포에 있어서 인간 뇌가 훨씬 많은 뇌세포수로 이뤄졌다는데 있다.
인간의 뇌는 당연히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시켜 주고 있는스위치,즉 정보의 결합과 그 정보의 기억능력을 맡고 있는 시냅스가 너무 많아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1입방㎜도 채 안되는 벌의 뇌는 생화학적 변화의 장소가 정확히 파악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뇌연구를 위한 실험 동물로 매우 이상적이다.
인간과 같이 벌도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있으며 그래서 필요에따라 학습된 정보가 저장된다.냄새물질의 실험에서 벌에게 어떤 특정한 냄새와 동시에 설탕용액을 주면 재빨리 그 상호관계를 배운다.그것은 벌에게 설탕용액을 주지 않아도 두번 째 같은 냄새자극에 다가갔을 때 곧바로 주둥이를 내미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이 실험이 멈추게 되면 벌은 단기기억에서 최초로 기억했던 경험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러나 설탕용액을 다시 주면 이 학습은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자동적으로 전환된다.이때 이런 자동적인 전환 현상은 기억형성에 참여한 신경세포와 그 신경세포의 생화학적 반응을 정확히측정할 수 있다는데서 인간의 기억메커니즘을 밝히 는데 절대적인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기기억에 있는 기억흔적이,예를 들면 마취.냉동 혹은 약한 전기자극과 같은 방해로 인해 지워지지 않는 한 장기기억으로의 고정은 벌의 유병체(有柄體.벌의 전뇌에 있는 버섯모양의 뇌구조물)에서 이뤄지고 있음이 밝혀졌다.이 유 병체의 조직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면 장기기억의 형성이 억제된다.
도파민.옥토파민.세로토닌,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과 같은 동물의몸에서 생성되는 질소화합물을 특별히 고농도로 이 유병체에 주입하면 학습능력을 상승 혹은 억제시킬 수 있다.
즉 처음에 극소량의 노르아드레날린을 주입하면 기억형성이 촉진되고 차츰 양이 많아지면 이 기억형성은 다시 억제된다.
오늘날 벌의 미니 뇌에서 추적된 기억의 세세한 구조물이 신경생화학에서 매우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이 구조물의 역할에 대해계속 밝혀진다면 인간의 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도 멀지않을 것이다.
▲경희대 생물학과 졸업(75년) ▲독일 본大에서 동물사회행동학으로 이학박사(86년)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86년~現) ▲『동물의 사회행동』등 역.저서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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