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권노갑-오세훈 '사즉생 계보' 잇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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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권노갑, 오세훈, 김한길

대통합민주신당 김한길 의원이 6일 정계은퇴 및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 의원이 처음으로 ‘기득권을 버리겠다’며 결단하는 자세를 보였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사즉생(死卽生)’ 계보가 새삼스럽게 화제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는 ‘살고자 하는 계파는 죽었고 죽고자 하는 계파는 살았기’ 때문이다.

◇사즉생=2000년 4ㆍ13 총선을 앞둔 2월. 당시 민주당의 권노갑 고문이 제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사례는 정치권의 교과서적 얘기로 전해오고 있다. 동교동계의 좌장이었던 권 고문은 불출마 이유에 대해 “신진 인사에게 길을 열여주고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인적 쇄신을 위해 자신은 물론 일부 중진들을 상대로 명예퇴진 작업을 벌였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공천에서 탈락시킬 대상자를 선정해 미리 통보하고 설득한 권 고문은 다른 의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권 고문에게 혹시나 ‘용퇴 주문’전화가 오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권 고문의 설득에 채영석ㆍ조홍규ㆍ양성철 의원 등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들은 ‘사즉생’대열에 합류했다. 각각 고속철도공단 이사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주미대사 등의 직책을 맡았다. 권 고문 역시 당초 예상과 달리 활동 반경이 오히려 넓어졌다. 권 고문의 설득에도 끝까지 총선에 나섰던 김상현 전 의원은 공천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4년 제17대 4ㆍ15 총선을 앞둔 1월. 5ㆍ6공 인사 퇴진론으로 당내 물갈이 논쟁을 촉발시켰던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 의원은 “기득권을 버리는데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는 평소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재선 당선이 유력했던 강남을 지역구를 버렸다.

불출마 선언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박관용 국회의장. 오세훈 의원은 열번 째였다. 한나라당은 개혁공천을 통해 탄핵 폭풍 속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했다. 이후 오세훈 의원은 서울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체면 섰다”=김한길 의원은 6일 “사죄하는 심정으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신당은 그나마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정당’ ‘정계은퇴 선언을 한 김용갑 의원보다 못한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에게 외면당한 것도 부끄러운데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어 더욱 그랬다”며 “이제 김 의원을 시작으로 인적쇄신 대상으로 거론돼 온 일부 중진 의원과 친노ㆍ386 의원들이 더욱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지략가로 불리는 김 의원이 불출마 선언으로 오히려 세력 확장을 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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