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60~64년 외교문서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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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영친왕 귀국 비운의 영친왕(英親王)이은(李垠)과 부인 이방자 여사의 영주귀국과 국적회복에 관한 기록도 이번에 함께 공개됐다.62년 당시 박정희(朴正熙)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의 지시로 62년 2월 법무부가 국적법상의 문제점을 조사한 뒤부터 63년 11월 환국,그이후의 뒷수습까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오고간 외교문서들은 말년의 구황족 생활에 대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영친왕이 외무부를 통해 치료비 등을 송금받은 구체적인 문서들이 있고,특히 이방자(李方子)씨는 62년 12월 일시귀국해 김종필씨등 관계 인사들을 만나 매월 2천달러정도의 생활부조금을 지급하여 달라는 요청을 했다 는 기록도 있어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던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李씨가 귀국예정이던 63년 6월부터 이은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는 주일대사의 보고가 있자 정부가 李씨의 치료비및 입원비를 송금하고 한국인 의사를 파견하는 등의 즉각적인 조치가 시행돼 朴대통령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 고 있다.
일본정부도 영친왕 귀국 전별금으로 5백만원을 지급한다는 기록도 나와있다.

<美 군사원조>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원조,61~62」에는 61년 8월3일 송요찬(宋堯讚)당시 외무장관이 새뮤얼 버거 주한美대사 앞으로 보낸 군사원조 요청공문 등 당시 군사정부가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는 다양한 문서가 포함돼 있다.
▲宋외무장관의 군사원조 관련 韓美정부간 회담 제의 공문(61년 8월3일)=한국 정부는 6개항의 혁명공약를 달성하려는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다.
이러한 조치를 이행하는데 있어 미국의 원조에 따라 영향받을 제반문제에 대해 양국이 상호이해를 같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양국 대표단이 이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에서 정부 대표간 회담개최를 제의하고자 한다.
▲宋장관이 버거 주한美대사에게 보낸 서한(8월10일)=한국의다양한 정부 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예산인데 한국의 국방예산이 전반적인 경제에 부담을 줄정도로 과도한 액수로 책정됐음을 이해하기 바란 다.

<한일협상> 이번에 공개된 「韓日국교정상화 이전의 경제협력정책(61~64년)」에는 김종필(金鍾泌)-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비밀회담이성사되기 수개월전 주일 한국대사관과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접촉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에 따르면 교섭초기 일본이 생각하는 경협액수보다 7천만달러나 적은 8천만달러를 협상카드로 제시하려 했으나 버거 주한 美대사가 일본의 의중을 귀띔해줘 협상액수를 높여 잡은 것으로 62년 8월 29일자 암호전문은 밝히고 있다.
또 62년 4월21일 오히라 관방장관은 주일 한국대사관측이 요청한 비밀접촉을 거절하면서 『한국이 영해 침범 일본 어선을 얼마든지 나포해도 좋다』는 식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측의 이같은 자세에 대해 주일 대사관 측은 당시 일본 내각이 재선이 확실시되는 것등이 이유라고 분석하고 일본의 강경대응에 맞서 한일회담을 최종결렬시키는 문제는 좀더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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