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 도란도란] 박현주 회장의 신년사 읽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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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아파트 중심의 부동산 투기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격 하락의 터널은 길 것입니다. 투자는 안 하고 국내에서 부동산 투기만 일삼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실로 무섭습니다. 2007년 중국과 인도에 운용사 설립을 끝내고… 상하이에서 홍콩을 넘어 뭄바이까지 역동하는 아시아 심장의 맥박소리를 듣습니다.”

 지금부터 꼭 1년 전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한 신년사입니다. 그의 말은 당시 시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었습니다. 시장은 여전히 ‘부동산 불패신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죠. 부동산 관련 리츠 펀드가 2006년에만 30%를 웃도는 수익률을 올린 것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판매회사마다 “주식보다 낫다”며 리츠 펀드를 앞다퉈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은 죽을 쒔습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은 겨우 3.6% 올랐습니다. 은행 이자도 못 따라간 수준이었죠. 코스피지수가 30% 넘게 오른 것과 비교하면 낙제 점수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더욱이 ‘버블 세븐’의 대표주자였던 강남구 아파트 값은 되레 1.4% 떨어졌습니다. 리츠 펀드 역시 수익률이 -20%까지 곤두박질했습니다.

 해외펀드는 어땠나요? 은행·증권사는 너도나도 일본 펀드를 추천했습니다. 일단 가격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죠. 2006년에 오르질 못했으니 다른 시장과 키 맞추기를 하자면 2007년엔 선전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반면 중국·인도시장에 대해선 모두가 주저했죠. 너무 올랐다고 본 거죠. 이 와중에 미래에셋은 중국·인도시장을 적극 공략했습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쏠릴 때 반대 방향을 봤던 거죠.

 지난 한 해 성적표를 받고 나자 표정이 엇갈립니다. 남들 따라 리츠·일본 펀드로 몰려간 투자자는 울상입니다. 중국·인도 펀드를 고른 투자자는 훈훈한 연말을 보냈죠. 그럼 올해는 어떨까요? 지난해 관성이 남아 올해도 중국·인도 펀드가 여전히 인기입니다.

 반면 박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브라질·러시아를 새 무대로 꼽았습니다. “선진국에 편중되어 있는 투자 자산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신흥시장으로 배분될 것”이라고도 했네요. 중국·인도가 당분간 고속성장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볼 나라로 자원부국인 브라질과 러시아를 유망하다고 봤습니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박 회장이 좋게 봤다고 덮어놓고 그리 따라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들과 다른 길을 보는 지혜가 지난해 투자 성과도 갈라놓았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자년 새해 ‘여러분 대박 터지세요~’.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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