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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B 당선으로 힘 받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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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24면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2일 충남 태안군 모항 해수욕장에서 바윗돌의 기름때를 닦고 있다. 고희가 넘었음에도 조 회장은 두 시간 남짓 기름때 제거 작업을 했다. [최정동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말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 재계 총수들과 만나 “기업이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재계에선 “투자 보따리를 풀려면 무엇보다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당선인이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면서 재계 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목받고 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에게 새 정부에 대한 재계의 바람을 들어 봤다. <편집자>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현장서 시무식

“노사 화합해야 7% 성장 가능해”

조석래(73) 전경련 회장은 유난히 말이 빠르다. 인터뷰하러 간 기자에게 “녹음기는 가지고 왔느냐”고 묻는 것이 첫인사일 정도다. 그런 조 회장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일자리 창출, 노사 관계 등에 대한 소신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2일 충남 태안군 모항 해수욕장에서다. 이날 전경련은 원유 유출 피해가 심각한 현지를 방문해 시무식을 겸해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200여 명의 임직원이 태안까지 내려와 이색 시무식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 회장은 “연초에 새해 인사나 주고받기보다 그 시간을 이용해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간단한 시무식을 마친 뒤 곧바로 마른 수건을 들고 기름 묻은 바윗돌을 닦던 조 회장은 규제 얘기가 나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요컨대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는 전부 다 뜯어고쳐야 한다. 규제 개혁을 올해는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조 회장에게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고쳐야 할 규제가) 하도 많아서…. 그중에서도 회사 설립, 공장 증설 등 새 사업과 관련한 규제가 너무 많다. 일례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추가로 골프장 한두 개를 더 짓고자 해도 허가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혀를 차면서) 투자를 하겠다는데…. 투자를 하려면 무엇보다 막힘이 없어야 한다.”
 
가장 급한 규제 완화는? “하도 많아서…”

창업 관련 규제가 너무 복잡다단해 처음부터 기업할 의지를 꺾어놓는다는 일침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재계 총수 간 만남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한 분위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바뀌게 됐다”며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투자를 늘려야 하는 만큼,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재계의 의견에 당선인도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을 찾아 재계 총수들과 간담회를 한 뒤 조 회장과 전경련이 부쩍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전경련이 제안한 ‘민·관 합동 국가경쟁력 강화 위원회’가 대통령이 위원장을,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이 공동 간사를 맡는 형태로 꾸려질 것이 확실해지면서 힘을 받는 모습이다.

전경련의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에 대해 조 회장은 “(자리의) 높고 낮음이 어디에 있느냐”며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의 소극적인 참여 때문에 전경련의 추진 동력이 약해 보인다는 지적엔 “4대 그룹만 어떻게 신경 쓰느냐. (전경련에) 나오지 않는다고 같이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조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7% 성장론에 대해선 “생산성이 두 배로 향상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옹호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경쟁력을 찾아오면 되는 것 아닌가. 투자 환경은 노사가 합심해서 만드는 거다. 세계 어디를 봐도 우리만 노사가 갈등 관계다. 태안 앞바다를 찾는 자원봉사자가 하루 2만~3만 명에 이른다고 들었다”며 “이렇게 온 국민이 나서 (사태 복구를) 도와주는 것은 기적 같은 일로 이런 저력을 잘 북돋우면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분배 과잉”

최근 10여 년간의 성장·분배 논쟁에 대해 조 회장은 ‘분배 과잉’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효성이 투자한 한국카프로락탐의 사례를 들었다.
 
“이 회사 직원의 평균 연봉이 6500만원이다. 그런데도 퇴직금 누진제를 하고 있다. 노조가 강해 실적이 좋지 않을 때도 200%의 특별 보너스를 챙겨 간다. 이런 노조가 하나라도 있으면 누가 한국에서 기업하려 하겠는가.”
 
조 회장은 국내 제조업 엑소더스를 ‘슬픈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효성의 중국 사업이 잘되고 있다. 언어도 안 통하고 현지 법률도 잘 모르는데도 그렇다. 국내에서 잘되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다. 규제 개혁과 노사 화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불필요한 일이다.”
 
조 회장은 소유지배구조 논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핵심은 경영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지배구조 개선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지배구조가 개선되나. 그것보다는 경영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경영자가 제 잇속만 챙기려고 하면 그냥 주주 역할로 만족하는 게 낫다. 이건희 회장이 0.5%도 안 되는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한다고 하는데, 이 회장 하는 일이 제 잇속만 차리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노조도 이런 점을 감안해서 ‘내 것’을 주장했으면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조 회장은 이 당선인과 사돈 관계다.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현범)이 이 당선인의 3녀(수연)와 결혼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인과 사돈’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조 회장은 “요새 (사돈 관계가) 특별한 거 있소?”라고 되물으며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 취임 전 추가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조 회장은 효성그룹 경영과 관련해선 “일찌감치 권한 위임을 했다”고 말했다. 이상운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과 세 아들(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전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시사했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전후해 효성에 입사한 삼형제는 구조조정과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현안들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해서 무엇 얻을 수 있나”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이 당선인과 경제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자식 얘기를 꺼내자 조 회장은 “자식 걱정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어”하면서 허허 웃다가 “걱정 안 해”라고 말했다. 3세 경영에 대해 이제는 확신이 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조 회장은 “자식 문제에 있어선 나는 행복하고 행운인 편”이라면서도 “(자식들이) 아직은 더 배워야 한다”고 말했었다. 다만 언제쯤 3세 경영이 본격화될지에 대해선 그는 “이제 그만 기름때나 닦자”면서 대답을 대신했다. 조 회장은 오는 17~21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해 달라진 한국의 재계 분위기를 미국 측에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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