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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만난 울포위츠 前 세계은행 총재와 갈루치 前 북핵 협상대표 대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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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04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4일 만난 로버트 갈루치 미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왼쪽)과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는 모두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4일 미국의 지한파 대표단 7명과 면담한 것은 미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례적이다. 대표단이 초당파라는 점도 주목거리였다. 당선인의 대외 정책관을 헤아려보려는 색채가 강하다. 한ㆍ미 동맹 강화에 대한 기대도 녹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당선인과 정권 인수위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표단 일원인 폴 울포위츠(65) 전 세계은행 총재와 로버트 갈루치(62)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을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날 함께 만나 대담을 가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울포위츠는 이라크전의 이론적 설계사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이다. 갈루치는 1994년 북핵 1차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 차관보로 대북 협상을 맡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대담은 1시간 동안 이뤄졌다.

“李 당선인 韓·美 관계 중시해 마음 놓였다”

신성호 교수

-이명박 당선인한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울포위츠= 미국의 중요 동맹국인 한국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만난 것은 영광이다. 이 당선인은 우리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외교ㆍ안보 현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선인이 한ㆍ미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탄탄한 한ㆍ미 관계를 바탕으로 두 나라가 힘을 합쳐야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협력이 잘 되지 않으면 모든 게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갈루치= 우리 7명은 각각 시각이 다르지만 모두 당선인의 외교ㆍ안보 정책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고 만족했다. 대북정책 접근방식은 한·미 동맹의 핵심 문제 중 하나로, 그가 이를 우선시하고 있는 점에서 모두 좋게 받아들였다.

-당선인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갈루치= 당선인은 몇 차례에 걸쳐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 시한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 7명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울러 한ㆍ미 동맹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통상 문제는 거의 안 다뤘고, 주로 안보적 측면을 논의했다.

울포위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다른 회의에서 논의됐다. 당선인은 FTA 비준 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내 생각에도 이는 매우 중요하다. FTA는 통상을 넘어 한ㆍ미 양국 간 전략적 관계를 강화시킨다.

-워싱턴에서는 한국의 대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울포위츠= 워싱턴이 모두 아이오와주에 나가 있기 때문에 누구를 가리켜 워싱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다섯 명이나 돼 매우 기쁘다. 우리는 지금 한국의 민주화를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24년 전 전두환 대통령 시절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부 차관보로 방한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한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진다. 당시 전 대통령 정부는 한국의 인권문제가 미국 정부와의 회담에서 제기되지 않도록 하는 데 급급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고 좋은 정치적ㆍ경제적 변화가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강해졌다. 북한도 한국의 변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일고 있는 변화를 봐야 한다. 역사가 북한을 남겨두고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갈루치= 한국의 민주화를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이 부분이 국제사회적인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당선인이 선출되면서 경제성장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냈다. 국제사회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고, 나아가 역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ㆍ미 동맹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용산기지 이전 등 동맹의 재조정이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잡음과 갈등이 있었다. 새로 출범하는 한국의 보수정권에서의 한ㆍ미 관계는 지난 5년보다는 좋을 것 같은 느낌인데.

갈루치= 노무현 정부 초기에 한ㆍ미 관계에 좋지 않은 사건이 몇 가지 있어서 긴장이 조성됐다. 양국의 대북정책, 접근법이 달랐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행동 대 행동’식의 상호주의보다는 먼저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맞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과도 잘 맞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1년 새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크게 바뀌었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6자회담 2ㆍ13합의가 가능했다.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이것(상호주의, 행동 대 행동)과 매우 근접한 것 같다. 이런 것을 중심으로 한ㆍ미 관계가 더 좋아지겠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이다. 대북정책과 같은 세부 정책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당선자와 새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한국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보느냐다. 미국은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양국은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울포위츠= 노무현 정부 시절 양국관계에 몇 차례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북한 문제 해법에 대해서는 양국 정부 간에 철학적인 시각차도 있었다. 그러나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매우 실용적으로 접근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두 나라가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두 정상이 단 한 차례의 회담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남북이 통일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후에도 한ㆍ미 간 전략적 협력관계가 지속되길 원한다. 이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고, 한국과 같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나라의 국익에도 맞는다. 이러한 관계는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양국관계는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한국은 이제 원숙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선진국가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람들의 시각이 다양해지고 사람들 간의 관계도 동등해질 수밖에 없다. 그 부분도 인정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은 한ㆍ미 동맹의 외연과 역할이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함께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데.

울포위츠= 조심스럽게 답하겠다. 한국군이 현재 이라크 북부에 주둔 중이지만 군사적 작전에 전혀 참가하지 않고 주로 재건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 되려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한ㆍ미 양국 간에는 공동의 이익과 가치가 있는 만큼 경제적·정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한국의 잠재적 이익은 크다. 호주는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지만 미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다. 가치를 공유하는 만큼 접근방식이 유사하다. 따라서 많은 분야에서 공조하면서 서로 돕고 있다.

-북한으로 주제를 돌려보자. 북한이 지난해 12월 31일로 돼 있는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 시한을 넘겼는데 그 이유를 무엇으로 보나.

갈루치= 북한이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현 시점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못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으로부터는 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지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원하는 것일 수 있다. 6자회담의 나머지 4개국이 더 많은 기여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북한이 의도적으로 이행을 지연하는 것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핵프로그램은 북한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당장 핵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작성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한 내부에서 신고 범위나 정확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조심해야 하고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2단계 조치를 담은) 6자회담 10ㆍ3합의가 좌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북을 제외한 5개국이 북한에 대해 일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 행정부 내 분위기가 궁금하다. 북한이 성실하게 핵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나.

갈루치= 행정부 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정책은 결국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점은 분명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그의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다. (북한이 성실하게 핵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회와 정부 내 (협상)반대파가 제동을 거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기다려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인내심이 끝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의 북ㆍ미 간 협상과 현재의 협상을 비교한다면.

갈루치=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 하지만 조건과 여건이 다른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더 고립됐고, 경제ㆍ정치적으로 더 낙후됐다. 6자회담도 5대1 구도로 정착됐다. 다시 말해 북한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 대상, 북한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국가가 5개국으로 늘어났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협상카드를 강화했지만 안보 위협을 가중시켜 역내 국가들의 공조를 강화시켰다. 94년과는 이렇게 상황이 다르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영구히 중단시키길 원한다는 점은 같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미국의 체제변화 시도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의 대선을 맞아 비핵화 프로세스의 속도를 낮출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울포위츠= 만약 북한이 다른 행정부 아래서 더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5~6년 전 고농축 우라늄(HEU) 증거가 발견됐을 때 미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뿐만 아니라 국무부 사람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이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북한이 계속해서 핵프로그램 해체의 가격을 높이려는 전술을 지속한다면, 사람들은 인내심을 잃을 것이다. 시리아와의 관계도 문제다. 이는 미국이 크게 우려하는 사항이다. 핵프로그램을 해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핵 관련 활동을 했다면 이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갈루치= 지연작전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 후보들은 모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북한이 계속 기다리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이 너무 지연시키면 ‘과연 미국과 북한 간 협상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 있나.

울포위츠= 세계은행의 정책은 186개국이 정하는 것이다. 어떤 형식이든 원조가 있을 것이다. 중국도 1980년대에 세계은행에 가입한 후 많은 원조를 받았다. 중국이 원조를 통해 큰 도움을 받았지만, 원조 때문에 중국 경제가 성장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개방을 했기 때문에 잘살게 된 것이다.

-3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전반적인 분위기와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갈루치= 현재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는 데다 이라크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 이와 무관하게 버락 오바마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모두 매우 흥미로운 후보들이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점 때문이다. 동시에 인종·성별의 문제 때문에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는 애널리스트들도 있다. ‘비전통적인’ 후보들이 있기 때문에 공화당이 오히려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관측이다. 후보 때와 당선인 신분 때 정책이 바뀐 경우도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중국 인식과 정책이 그랬다. 이것은 차기 대통령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대선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안보와 관련한 아시아와의 전략적 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미ㆍ일 동맹, 한ㆍ미 동맹, 미ㆍ호주 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후보가 당선되는지와 관계가 없다고 본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면 국무장관은 누가 될 것으로 보나.

갈루치= 어느 민주당 후보가 이기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의 경우 대선 후보로 지명되지 않으면 국무장관 자리를 받겠다고 하고 있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대사, 스트로브 탤벗 전 국무부 부장관 등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리=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서동희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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