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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클린턴처럼 …‘3등 악몽’ 힐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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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3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지지자들과 대화 중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디모인 AP=연합뉴스]

 3일 오전 아이오와주 디모인 시내 로커스트 거리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경호원 3명을 데리고 들어 왔다. 커피를 마시던 기자들이 깜짝 놀라 몰려들었다. 한 기자가 “오늘 밤 코커스에서 아내가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클린턴은 “힐러리는 질 것이라는 관측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힐러리는 누구와 어디서 경쟁을 하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 패하면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꾸했다. “1992년의 나를 봐라. 나는 (아이오와주에서 3위를 했음에도) 뉴햄프셔주에서 2위를 했다. 이후 메인주의 코커스에서 3위, 콜로라도주에서 2위를 하는 등 조지아주에서 이길 때까지 별로 잘하지 못했다. 멀리 봐야 한다.”

 아이오와주는 클린턴 부부와 인연이 먼 곳임이 이날 확인됐다. 힐러리도 남편에 이어 3위를 한 것이다.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이젠 자신의 표밭으로 여겼던 뉴햄프셔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오바마 바람은 이미 뉴햄프셔에서도 불고 있다. 전국 지지율에선 여전히 오바마를 많이 앞서고 있는 힐러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 디모인의 코커스 현장에서 만난 오바마 지지자 린다 미하일로비치(43)는 “힐러리가 일관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 게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뉴욕주에서 불법 이민자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문제를 놓고 힐러리가 처음엔 찬성했다가 나중에 반대로 돌아선 것이 한 예”라고 했다.

 힐러리는 유세 기간 내내 경험을 강조했지만 그에 걸맞은 경륜과 혜안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는 미 행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는 걸 찬성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란 핵 프로그램이 2003년 가을 중단됐다는 미 정보기관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그의 판단력은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가 11월 중순 아이오와에서 힐러리를 추월하자 그를 가리켜 “이슬람 교도”라고 하는 등 캠프의 네거티브 전략도 힐러리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사람이 차갑다”거나 “부시와 클린턴 가문이 돌아가며 해 먹는다”는 비판이 많은 것도 패인의 하나다. 힐러리가 이라크전에 찬성한 것도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힐러리가 참패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뉴햄프셔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는 코커스 후 아이오와 패배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했다. “나는 나머지 선거운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고, 이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소수의 당원이 참가하는 코커스와 달리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역대 평균 투표율도 40% 이상으로 비교적 높기 때문에 전국 지지도가 높은 힐러리로선 기대를 걸 만하다. 그러나 뉴햄프셔주에서도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올 경우 힐러리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디모인(아이오와)=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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