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IPTV가 해결해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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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산업적으로는 IPTV 유관산업의 활성화와 글로벌화를 기대할 수 있다. 방송·통신 융합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IPTV 법제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파행적 모습과 원칙 없이 흔들리는 행보가 있었다. 이런 혼선은 IPTV 관련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IPTV 법안에서 동등접근성 보장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업자와 같이 망을 확보하지 않은 기업이라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선에서 봉합된 것이다. 동등접근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망 제공 방법·절차를 놓고 다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특히 이해가 엇갈리는 업체들끼리 망 이용 대가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대립할 게 분명하다.

소비자 이익 측면에서도 세부적인 문제가 손질돼야 한다. 서비스 품질 보장, 기술 표준화 문제 등 구체적인 부분을 놓고 의견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IPTV가 도입됨에 따라 현재 케이블TV의 방송 권역과 점유율을 제한하고 있는 방송법까지 개정할 필요성도 대두될 것이다.

IPTV는 단순히 미디어 시장에만 파장을 미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미디어 수용 태도를 바꾸고, 관련 산업계의 지각변동까지 수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복잡한 세부 난제들을 원만히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IPTV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그러려면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이 요구된다.

우선 통신과 방송 관련법들을 네트워크 중심의 체계에서 ‘서비스와 콘텐트 중심’ 체계로 바꿔야 한다. 기존 통신 관련법들은 전송망을 중심으로 사업자들을 분류하고 있다. 특히 단말기 보급 확대에 치중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 결과 콘텐트 산업은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선 IPTV가 나와도 소비자들은 디지털케이블TV와 별다른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콘텐트의 질보다 서비스 이용 가격을 고려해 매체를 선택하기 쉽다. 설사 유료서비스 시장이 등장한다 해도 주로 저가 시장을 형성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결국 콘텐트 산업은 발목이 잡히고,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도 제한될 소지가 다분하다. 자본과 망 지배력에 따라 미디어 시장의 독과점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IPTV가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익성 확보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익성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공익성을 지상파 방송에만 요구되는 것으로 여기거나 IPTV 사업의 발목을 잡는 방해물 정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공익성은 정보를 다루는 모든 미디어에 요구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보의 정확성과 공정성, 서비스에 대한 높은 신뢰성, 그리고 유용성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최근 IPTV 법제화 과정에서 공익성을 소홀히 여기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공익성을 산업성과 동일한 수준에 놓고 마치 대립적 개념으로 간주하는 흐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당연히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IPTV는 산업성보다 공익성이 앞서야 하고, 더구나 IPTV가 미디어 환경이란 점에서는 더 이상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최성진 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