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미국의 러시아 정책-옐친보다는 전체에 초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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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체첸 공화국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정책을 취하고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체첸의 참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옐친의 기반은 더욱 약화됐다.
빌 클린턴 美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즉시 중단하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러시아에 종용했다.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옐친은 軍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하고 그로즈니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습을 자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러시아 군부는 옐친의 이같은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백악관측은 체첸 사태의 파장과 결과에 대해 주시해야 한다.왜냐하면 체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양국간의 정치구도를 변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각 전부터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처럼 옐친도 러시아 나 세계가 체첸사태의 결과에 대해제대로 대처하기도 전부터 난처한 지경에 처해있다.
옐친은 개혁파들의 지지를 상실했으며 조언자들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또 그동안의 개혁으로 쌓아왔던 도덕적 권위도 상실했다.군에 대한 옐친의 통제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선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며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될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는상황이다.
이 모든 여건은 미국이 옐친을 중심으로 정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러시아 전반의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시사해 주고 있다.그 방향은 러시아의 경제.정치.군사 개혁을 지원하고 또 유도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 다.이는 예고르 가이다르 前총리같은 민주적 지도자와 연대를 공고히 해야함을의미한다.
러시아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것은 실상 양국의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 예로 舊소련의 핵무기 철거작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냉전 이후의 안보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 할수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키고 물가상승률을 낮추는데 절대적으로 긴요한 1백30억달러 지원을 두고 러시아와 협상하고 있다.
체첸 사태를 이유로 원조를 늦추거나 여러 조건을 붙이는 것은단기적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원조 거부가 장기화된다면 옐친 개인의 실수 때문에 러시아 국민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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