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위 이어 인수위까지 '넘버2'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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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가 정권 인수를 시작했다.

인수위도 모습을 드러냈다. 인수위 인선을 보면 대통령 당선자의 향후 정국 구상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역대 인수위원장들은 실세이었거나, 적어도 정권에 일정한 지분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10년 전 김대중(DJ) 정권의 인수위원장은 이종찬대선기획본부장이었다. 그는 인수위 활동 뒤 DJ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5년 전 노무현 정권의 인수위원장은 임채정 의원이었다. 임 의원은 국회의장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김진표 당시 국무조정실장을 인수위 부위원장에 앉혀 진보 색채의 학자들 위주로 구성된 인수위 색채를 중화(中和)시켰다. 그는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이 당선자는 인수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부위원장에 김형오 의원을 임명했다. 이 위원장은 대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CEO형 여성 대학 총장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선자가 인수위원장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비(非)정치인을 앉혔다는 점이다. 이 위원장은 선거전 한복판에 있지도 않았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에선 대체로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 당선자의 용인술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본다. 실상 선대위 인선도 그랬다. 이 당선자는 대선 기간 공동선대위원장으로도 6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유종하 전 외무장관,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 배은희 리젠바이오텍 대표 등이다. 이들은 인수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당선자의 한 참모는 “일 중심으로 일에 맞게 사람을 쓰는 것이 이 당선자의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경우 권력의 동향에 예민한 세간의 관심은 ‘실세’나 ‘잠정 2인자’들의 거취로 옮겨간다. 한때 이명박 캠프의 2인자로 불렸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24일 이 당선자를 2시간 이상 독대한 뒤 자신의 계파로 분류돼 온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연구회(발전연)’ 해체를 선언했다. 외견상 정국의 무대 뒤로 물러선 셈이다.

이 당선자의 멘토 역할을 해온 친형 이상득 부의장과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은 노출을 피하려 애쓰고 있다. 최 전 회장은 여의도의 사무실을 폐쇄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청탁이나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을 피해서 은둔 모드로 돌입했다”고 전했다. 이 부의장은 집무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거나 선거 기간 도움을 준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부의장과 최 전 회장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은 거의 없다. 도리어 한나라당 안에선 “이 부의장과 최 전 회장은 대선 기간처럼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게 되겠지만 인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선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밖에 이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꼽혀온 정두언 의원은 인수위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당선자 비서실 보좌역을 맡았다. 당선자와 인수위, 청와대를 오가며 당선자의 뜻을 전하는 ‘리베로’ 역할에 치중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는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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