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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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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37년 네덜란드의 한 미술품 중개상이 놀라운 발표를 한다. 얀 베르메르(1632~75)의 미공개 작품 ‘에마우스의 제자들’을 발굴했다고. 베르메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국보급 화가.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대 최고의 베르메르 전문가 드레디우스는 “여태까지 그런 작품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위대한 화가의 작품을, 그것도 완벽한 상태로 갑자기 맞닥뜨리는 순간”이라고 극찬했다.

 중개상의 이름은 반 메헤렌(1889~1947). 그는 42년까지 베르메르의 작품 6점을 더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45년 5월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40년부터 네덜란드를 점령하던 나치 독일이 물러가자 전범으로 몰린 것이다. 히틀러의 후계자 헤르만 괴링에게 국보급으로 평가되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을 판 것이 문제였다. 재판은 ‘죽일 놈’이라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진행됐다. 47년 메헤렌은 법정에서 “내가 판 그림은 모두 내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자 메헤렌은 자신에게 유화물감과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베르메르의 작품 하나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재판장을 납득시킨 그는 위작 제조라는 가벼운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지만 곧이어 심장마비로 옥사하고 만다.

 메헤렌 사건은 미술품의 진위 감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위조자의 솜씨가 뛰어나면 날수록 진위는 과학적 감식기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오늘날의 분광분석법을 이용하면 극소량의 샘플만으로도 안료와 이를 녹이기 위해 사용한 기름의 성분·조성 비율을 알아낼 수 있다. 종이가 산화(酸化)된 정도도 검사할 수 있다. 검찰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박수근·이중섭 위작 사건이 한 예다. 오래된 종이를 새로 잘라서 사용한 사실을 절단면의 산화 정도를 측정해서 밝혀낼 수 있었다.

 새해 들어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에 대한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45억2000만원)를 기록했던 작품이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목에 의한 감정은 서로의 주장이 다르면 결론이 나기 어렵다. 차제에 과학 감정을 해 보면 어떨까. 액자의 흰색 페인트가 언제 칠해진 것인지는 형광 조명만 비춰 봐도 판정할 수 있다고 한다. 액자 밑 부분에서 물감을 조금 떼어 내면 분광분석도 해 볼 수 있다. 그래야 ‘국민화가’ 박수근도 저 세상에서 편해 하지 않을까 싶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