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혁명 때 뭐했소” … 재기 발랄 역사 풍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TV 토크쇼라는 형식을 빌려 루마니아혁명의 안팎을 풍자한 ‘그때 거기 있었읍니까?’. 블랙코미디의 상상력이 일급이다.

세상에서 가장 희한하고 엉뚱한 TV 토크쇼가 진행된다.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끌어내린 1989년 루마니아 민주혁명이 주제지만 논점을 빗나간 진행에 출연자들은 거짓말과 비방을 일삼는다. 어차피 정치토론 따윈 관심도 없고 종이배 접기에 열중하는 출연자, 혁명영웅인 양하다 시청자의 제보로 들통나자 다른 사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출연자, 출근 전 신화 모음집에서 읽은 상투적 문구 하나를 대단한 수사인 양 읊어대는 진행자. 토크쇼는 결국 동네 주민이 총출동하는 엽기 수다방으로 마무리된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사람들은 보통 때와 다름없는 소소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지역방송국 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비르질(테오도르 코르반)은 혁명 16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쇼를 기획한다. ‘1989년 12월 22일 12시 8분, 우리 마을에도 혁명의 움직임이 있었는가’가 주제다. ‘1989년 12월 22일 12시 8분’은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지던 역사적 순간이다.

술만 취하면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주정뱅이 역사교수 마네스쿠(아이온 사프드라우). 월급봉투를 타 드는 순간 빚쟁이들이 몰려오고 곧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고장 난 TV와 씨름하는 에마노일 할아버지(미르체아 안드레스쿠)는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가 유일한 낙이다. 토크쇼를 몇 시간 앞두고 약속했던 패널들이 펑크를 내자 비르질은 마네스쿠와 에마노일을 급히 게스트로 초청한다.

“혁명을 돌아보는 것은 과거가 명확해야 미래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며 비르질은 제법 엄숙하게 입을 열지만 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에마노일은 계속 딴짓이고 마네스쿠는 시위 주동자를 자처했다 들통난다. 그의 거짓말은 주민들의 전화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고, 이후 토크쇼는 마네스쿠의 행적 추적으로 변질된다. 과연 그날 우리 마을에서 시위 발발 시간은 정확히 언제인가, 혹 12시 8분 이후라면 혁명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데까지 번진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이사벨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최근 세계 영화계에 약진하는 루마니아 영화의 힘과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신인 감독 데뷔작에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루마니아 영화는 올 칸영화제에서 문주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되, 재기 발랄한 풍자 감각을 잃지 않은 블랙 코미디가 알싸하다. 포장 없는 거칠고 단출한 매력이 주제와 잘 맞물린다.

역사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특히 엉뚱하고 유치한 세 주인공들이 손발이 딱딱 맞는 연기 호흡을 선사한다. 악의 없이 허술한 인물들의 난투극이라 한껏 웃고 나서도 뒤끝이 개운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박제화된 혁명이나 순정을 잃은 정치에 대한 손쉬운 염증과 냉소를 넘어 진정한 혁명의 의미를 묻는 점이다. 과연 우리 동네에 혁명이 있었는가, 시위 발발 시간은 정확히 몇 분인가 따져 묻는 패널들에게 에마노일 할아버지는 뜻밖의 명언을 남긴다. “혁명이 언제 시작됐느냐는 언제 가로등이 켜졌냐처럼 정확히 알 수 없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혁명을 만들어낸다네.”
 
요지경 토크쇼에 마냥 낄낄대다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진짜 혁명은 극적인 사건이나 거대한 명분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남루한 일상 속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요란한 혁명에도 우리의 소소한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슷한 역사적 체험을 했던 우리 관객들은 더욱 곱씹어 볼 만하다. 3일 개봉.

양성희 기자

주목!이장면토크쇼가 끝난 후 카메라는 흰 눈발 속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마을 전경을 비춘다. 그리고 여기저기 소리 없이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내레이터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혁명에 대한 나의 기억처럼”이라고 말한다. 에마노일 할아버지의 ‘가로등 비유’에 해당하는 장면. 감독이 생각하는 혁명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