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뛰자2008경제] ‘성공의 추억’잊어야 미래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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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2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유망 비즈니스를 찾아라’.
 
올해도 우리 기업들은 이 화두에 매달려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혹독한 시련기를 견뎌낸 한국 기업들은 줄곧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동분서주했다.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대다수 기업은 여전히 암중모색이다. 10년 넘게 기댄 ‘주업(主業)’을 뛰어넘을 새 수종(樹種)사업을 찾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금맥’을 캘 수 있을까. 유수 증권사 애널리스트 160명을 상대로 27, 28일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것에 민간 ‘싱크탱크’의 조언을 보태 유용한 지침을 만들어 봤다
 
◆왜 제자리걸음일까=대기업들은 사내에 신수종 사업 발굴 전담팀을 가동하거나 컨설팅을 받는 경우가 많다. 태양광 발전 등 증시의 ‘유망 미래사업’ 재료에 편승한 기업도 적잖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노력에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애널리스트 설문조사 결과 기업들이 미래사업 발굴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45%)이 ‘잘하고 있다’(34%)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로 유망하다고 소문난 분야엔 ‘쏠림형 묻지마 투자’로 시행착오가 잦았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9%)은 ‘신수종 사업 발굴 속도가 늦다’고 지적했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거 성공의 경험이 함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환경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반도체·철강 같은 대량 생산 체제와 기술 혁신에 초점을 맞춘 과거 성장방식에 오히려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애플의 아이팟과 구글의 검색 시스템, 일본 닌텐도의 DS 등 2000년대 이후 ‘메가 히트’ 상품은 모두 시장을 새로 창조한 상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정부나 기업 모두 글로벌 단위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환경·에너지 분야의 규제 때문에 관련 신사업 대응이 늦다”고 지적했다.

◆생각과 조직을 바꿔야=생각이 유연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그러려면 조직도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이병욱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산술적으로 계량화하는 사업타당성 같은 기존 잣대로만 신규 사업을 찾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정욱 엑센추어 전무는 “국내 기업의 신수종 개발팀은 천편일률적으로 최고경영자(CEO)급 핵심 경영진을 팀장으로 둔 상명하복식 조직인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신사업을 찾는 조직일수록 글로벌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끼가 넘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유별난 사람으로 채우고, 맹렬하게 토론하도록 조직을 꾸며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도우미’를 찾아라=하나부터 열까지 기업 안에서 해결하려는 마인드를 바꾸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상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계 유수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무얼 개발하기보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기술과 상품 개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글로벌 상품으로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첨단 벤처기업의 아이템을 잘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외 유망 기업을 인수합병(M&A)해 신수종을 구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유망 분야는=윤상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 기업들이 좇는 차세대 사업은 크게 네 가지 분야”라고 말했다. 첫째는 환경·에너지 분야. 대체 에너지와 바이오 플라스틱,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둘째는 정보전자·나노·바이오 등 신소재 분야. 셋째는 실버 산업과 키즈(어린이) 사업, 여성과 신흥국 저소득층을 겨냥한 사업분야도 거론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분야의 융합·복합화를 꾀하는 ‘컨버전스’ 사업이다. 기존 사업과 금융·정보기술(IT)·통신·서비스를 하나로 묶는 시도가 활발한 것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나노·바이오 분야를 우리가 도전해 볼 만한 으뜸 유망 사업(26%)으로 꼽았다. 이어 첨단소재(24%), 태양광 신재생 에너지(20%), 금융(17%), 문화예술 콘텐트 분야(8%)가 많았다.

표재용·문병주·고란 기자

◆신수종(新樹種)사업=미래에 새롭게 키워 나갈 만한 유망 사업. 기존의 주력 사업을 대체해 10,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이 되거나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영역. 차세대 주력 사업이라고도 불린다. 신재생 에너지나 바이오 등이 이런 분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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