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안티탱크’서 ‘싱크탱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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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2·28 경제인 간담회’를 계기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계의 본산’이라는 옛 영화(榮華)를 되찾으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차기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공약에 맞장구를 칠 재계의 핵심 지원 창구를 자임하려는 것이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이명박 당선자가 설립을 약속한 민관 합동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재계 쪽 대표 물망에 오른다.

 전경련 고위 인사는 “이틀 전 재계 리더와 당선자 간의 ‘경제인 간담회’ 내용의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고 30일 밝혔다. 우선 내년 1월 15일 서울 신라호텔에 이 당선자를 다시 초청해 ‘신년 인사회’ 행사를 열어 한국·외국 기업 간 교류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그 행사엔 전경련 회원사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서울재팬클럽 등 주한 외국기업 단체장과 외국 실업인, 주한 외교사절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경제 살리기 공약의 재계 파트너로=전경련은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과제에 손을 맞추기 위해 사무국 조직 개편까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투자·고용 확대 등 차기 정부의 중점 공약이 이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내는 데 재계가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 인프라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승철 전무는 “전경련이 10년간 정부와 사회 일각의 반기업 정서에 대응하는 ‘안티탱크’의 소극적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 경제 살리기에 재계의 중지를 모으는 본연의 ‘싱크탱크’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이 당선자가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를 검토하고, 주요 기업인으로 구성된 ‘해외 투자 유치단’ 을 가동하는 문제도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재계 ‘맏형’위상 되찾나=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은 전경련에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바닥 모르는 위상 추락을 겪어야 했다. 전경련이 취합한 각종 건의는 대기업에 반감을 가진 정권 실세들에 의해 번번이 묵살됐다. 급기야 또 다른 기업인 단체 대한상공회의소와 통폐합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대두됐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여러 해 전에는 전경련 임원 사무실이 도청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자체적인 보안 검사까지 했을 정도로 피해의식이 컸다”고 회고했다.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전경련 회장이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1999년 해외 도피한 것이 그 수난의 시작이었다. 이후 삼성·현대자동차 등 4대 그룹 총수들도 차례차례 서울 여의도 전경련 쪽 발길을 끊었다. 외환위기 직후 전경련이 주선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진 데다 전경련에 쏠리는 반기업 정서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설화’를 두 번 겪기도 했다. 2003년 1월 전경련 고위 임원이 외신 인터뷰에서 ‘노 정권 인수위 목표는 사회주의’라고 말해 미움을 샀다. 올 7월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사돈 관계인 이명박 당선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친기업 성향의 이 후보가 당선되자 반전 분위기가 역력하다. 19일 선거 이후 전경련을 찾는 기업인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그럴수록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어깨에도 힘이 실리는 기색이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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