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섬기는 정치 하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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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7면

1987년 우리가 원하던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그거 하나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 80년대를 억눌러온 유신체제와 5공화국의 체육관 간선제를 깨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다섯 번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했다. 이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되돌릴 수 없는 원칙이다. 다행히 호남도, 진보세력도 이러한 제도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무현 정부와 이번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며 그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두 가지 핵심 문제만을 제시하려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첫째 과제는 민주주의의 일상화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모두 시민의 참여와 동의를 귀하게 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그들만의 정부였다. 인사는 철저하게 코드를 따랐고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는 완강하게 반대 의견을 배제했다. 특히 대북정책, 균형발전정책, 교육정책, 언론정책, 부동산정책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참여는 일부 코드인사나 시민단체가 맡아 했다. 총리와 부총리 등 고위 관료들은 여론이 비판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기보다 국민을 꾸짖는 자세를 취하는 적이 많았다. 반대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 모두가 민주주의 문화가 선진화하지 않은 탓이다. 아직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로 권력을 잡으면 임기 동안은 무엇이든 뜻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단순히 말하면, 5년은 우리 권력이니 국민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자세다. 정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10%대를 맴돌아도, 전국의 신문과 방송이 한목소리로 비판 의견을 쏟아내도 정책을 바꾸는 시늉조차 안 한다.

이렇게 보면 지난 20년의 대통령직 수행은 국정관리라기보다는 통치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한국 대통령은 민주화가 진행된 지 20년이 지나도 선출된 제왕으로 군림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민간인 대선후보의 비서와 대변인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지역구나 소관 상임위원회 일보다, 국회의 법안이나 예산안 심의보다 대통령 권력의 쟁취가 백 배는 더 실속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일상화는 제왕적 대통령의 해체를 의미한다.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결
정은 늘 국민의 의사를 살펴 방향과 속도를 정하는 정치문화를 말한다. 선거 때 받은 지지는 대통령직을 맡긴다는 국민의 의사표시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민주주의가 일상화하는 데 꼭 필요한 둘째 필수조건은 자유로운 공공 커뮤니케이션 문화다. 정부 각 부처는 정책의 방향과 배경을 충분히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의무다. 국민이 정부 일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면 최선을 다해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고 정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한국의 공공커뮤니케이션 현장에는 국정홍보만 있었다. 국정브리핑과 청와대 브리핑, KTV 등의 활동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기능에 치중했다. 정권 말기에 추진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이러한 왜곡된 공공 커뮤니케이션 제도를 완성하려는 시도였다. 정부가 직접 언론으로 나서게 되니 비판적 매체들의 정파성도 덩달아 강화됐다. 결과는 극심한 정파화와 그에 따른 공공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신뢰 상실이다. 대선 막판 BBK 사태에 이르러서는 모든 사실이 상대화됐다.

다행히 이명박 당선자 측은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말로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민주주의의 일상화는 건강한 공공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회복에서 시작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해체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왜곡된 ‘말길’을 바로잡는 일은 당장도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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