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연의패션리포트] 폭발하는 미래의 '블루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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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BRICs)’는 경제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경제 4국의 알파벳 첫 글자를 모은 용어다. 브라질의 ‘B’를 빼면 패션 마켓에서도 이들 3국의 성장은 눈부시다. 다가오는 2008년이 주목되는 이들 인도·러시아·중국의 시장을 분석한다.  

 “인도는 대단한 선물의 나라다. 타지마할은 한 남자의 결혼 선물이었고 최근에는 부인에게 에어버스를 사준 남자도 있지 않았나.” 루이뷔통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브 카셀이 인도 최대의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를 두고 한 말이다. 암바니는 아내의 44번째 생일을 맞아 6000만 달러짜리 비행기를 선물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에서 10년 안에 인도가 최대의 럭셔리 제품 소비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인도판 보그의 편집장인 프리야 타나는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1세기 전, 인도에는 ‘마하라자(Maharajah·전통적인 인도의 귀족들)’라는 엘리트족이 있었다. 당시 이들은 패션 럭셔리 시장의 대단한 VIP였다. 루이뷔통 트렁크와 카르티에에서 특별주문 제작한 주얼리를 가지고 있었던 마하라자들은 늘 명품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이후 어떠한 문화적인 혁명이나 단절도 없었다. 다만 인도는 역사적인 상황 때문에 잠시 가난했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물론 인도의 패션 시장이 온통 무지갯빛은 아니다. 50%에 달하는 높은 수입관세와 이렇다 할 패션 거리나 상점도 없는 부실한 인프라, 아직도 인도 여성 대부분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전통 의상 사리(sari)라는 문화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러시아의 ‘밀리어네어 페어(the Millionaire Fair·2002년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한 거부들을 위한 엑스포로 2005년부터는 매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음)’에는 개인용 헬기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보석들이 주렁주렁 박혀있는 연필, 금으로 만든 유아용 젖병 등이 등장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러시아 마켓이 앞으로 5년간 15% 정도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과 인도보다 유럽에 가까운 러시아는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의 진입이 보다 쉬운 편이다. 타임의 조사에 따르면 베르사체와 디오르가 러시아 내에서는 가장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다. 특히 러시아 소비자들은 반지와 목걸이를 사는 데 돈을 많이 쓰는 편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반지 하나에 쓰는 돈은 평균 1084달러(약 1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웬만한 럭셔리 브랜드들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은 이제 ‘숨겨진’ 브랜드를 찾고 있다. 비싸면서도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러시아판 엘르의 패션 디렉터인 올가 미카이로스카야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신흥 부자들의 소비 패턴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런던 출신의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이나 일본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가 만드는 콤 데 가르송, 혹은 보다 보수적인 랄프 로렌 같은 지적인 브랜드들이 새롭게 뜨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러시아인에게 비잔틴 문화의 영향은 강력해서 미니멀리즘보다는 화려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러나 인도·러시아도 중국에 비하면 그 규모에 있어서는 비길 바가 아니다. 2015년께가 되면 중국 소비자의 소비력은 일본과 같아질 것이며, 미국의 소비력을 앞설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물론 이런 중국인들은 전체 중국 인구의 1.5%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중국의 신흥 여피들은 수입차에서 값비싼 손목시계까지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중국 부유층의 22%가 롤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부유층의 66%가 적어도 6개월 동안 시계 하나에 2253달러를 쓴 적이 있다고 한다. 타임지 조사에서 중국인들이 뽑은 시계 브랜드 톱 5는 롤렉스·오메가·카르티에·바셰론 콘스탄틴·브라이틀링의 순이다.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라코스테, 발렌티노, 샤넬 혹은 발리의 순이다. 조르조 아르마니는 내년 중국 내에 24개의 새 매장을 열 계획이다.

 중국인들이 럭셔리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얼굴’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급속도로 성장하는 경제대국에서는 부와 권력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것이 럭셔리 제품이란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메이드 인 프랑스’를 선호하는 중국의 부유층이 과연 자국에서 생산되는 럭셔리 제품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하는 점이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9년까지 전 세계 럭셔리 제품의 60%는 중국에서 제작될 것으로 보이며, 이 중 적지 않은 양이 그대로 중국인들에 의해 소비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대 생산국에서 최대 소비국이 되어 가고 있는 중국, 신흥 부호들의 소비력을 등에 업고 최고급 상품의 소비 메카가 되고 있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전통을 이어 받아 럭셔리 패션산업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있는 인도, 이 세 나라를 주목할 때다.

강주연 패션잡지 엘르 수석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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