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 인권수사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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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천 초등학생 피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열다섯살짜리 중학생을 유력한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가 풀어주었다. 용의자의 자백에만 의존하는 무리한 수사가 낳은 결과다.

이번 수사는 기본원칙에서 한참 벗어났다. 용의점이 포착됐다면 초동단계부터 과학수사로 물증을 확보한 뒤 체포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경찰은 서둘러 자백부터 받아내고 이를 근거로 잡아들였고, 자백을 번복하자 하는 수 없이 풀어줬다. 사전에 조금이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았다면 이런 망신은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학생이 자신보다 불과 두세 살 아래인 초등학생 두 명을 살해했다는 진술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겠다는 의욕은 앞섰지만 수사능력은 따라주지 않는 현실의 괴리 속에서 무리한 강제수사가 이뤄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수사가 미성년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점도 문제다. 미성년자에 대해 야간에는 조사를 피하도록 한 경찰직무규칙을 어겼다. 미성년자는 억압된 공간에서는 수사관의 의도에 따라 허위자백하는 경향이 있음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경찰이 자백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사자가 끝내 결백한 것으로 드러나면 평생 간직하게 될 상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사실 경찰의 강압수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993년에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꿈에서 범인 이름을 계시받았다"는 등의 황당한 제보를 토대로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몰았다.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가 뒤늦게 풀어주는 식의 수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경찰이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경찰의 주먹구구식 강제수사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고질적인 한탕주의를 버리고 과학수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비로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수사기법이나 인권존중은 과거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면서 경찰수사권 독립을 외친들 누가 귀담아 들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