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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의 BT 이야기] 차세대 구글 꿈꾸는 바이오 기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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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27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25개 고성장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포브스는 250억원 이상의 매출과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 기업을 대상으로 고성장 기업을 분류하는데 지난 몇 년간은 미국 인터넷 기업 구글이 일등 자리를 지켜 왔다. 2006년에 선정된 25개 기업에는 바이오텍 기업이 7개 포함됐다. 전통의 바이오텍 강자인 암젠과 제넨텍, 그리고 최근 눈부신 성장을 보인 몇몇 중소 제약회사가 영광을 차지했는데 이 중 눈에 띄는 기업이 ‘일루미나’라는 작은 바이오텍 회사였다. 일루미나는 당연히 구글이 있어야 할 일등 자리에 이름을 내건 신생 회사였다.

일루미나는 1998년 미국 터프스대학의 한 과학자가 설립했다. 터프스대학 화학과 교수였던 데이비드 월트 박사는 자연계의 물질을 검출하는 일에 몰두했다. 토양에 있는 중금속, 각종 냄새의 원인이 되는 물질들, 생체 내의 수많은 단백질을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내에 검출해 측정하는가가 그의 관심사였다. 기존의 기술로 다양한 물질을 한꺼번에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은 월트 박사는 자신만의 독특한 분야를 개척했다. 당시 크게 주목받던 나노 기술을 이용해 미세한 광섬유 끝에 화학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작은 센서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그는 수만 개의 서로 다른 물질을 동시에 검출할 수 있는 센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그의 연구 업적은 사이언스·네이처와 같은 유명 과학저널들에 연이어 발표됐다.

월트 박사의 관심은 당시 과학계의 큰 이슈인 휴먼 지놈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3조원이라는 막대한 자본과 13년이라는 긴 기간을 소모해 인간의 유전자 배열을 밝혀낸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바라보던 월트 박사는 자신의 광센서를 이용한다면 획기적인 비용과 시간으로 이를 마칠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월트 박사는 자신이 개발하던 광센서 끝에 작은 구슬을 붙인 뒤 각각의 구슬이 하나의 유전자 단위를 증폭하고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해냈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면 10억원 남짓의 비용으로 인간 유전자 서열 전체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주창했다. 그러나 이를 상업적으로 입증한다고 나서는 회사가 없어 결국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소개받은 벤처캐피털을 통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오늘의 ‘일루미나’다.
일루미나는 창업 이후부터 기록적인 성장을 달성해 왔다. 2년 만에 나스닥에 기업을 공개했는데 당시 조달한 자금은 1000억원에 달했으며, 매출은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15배에 이른다. 또한 올해는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쯤 되면 포브스가 최고의 고성장 기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월스트리트가 촉각을 세우는 ‘차세대 구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일루미나’가 개발한 구슬 바이오칩 모형.

일루미나의 기술적 토대를 제공한 월트 박사는 여전히 터프스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바쁜 일정을 쪼개 회사의 과학자문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성공한 과학자다. 과학적 업적과 돈방석이라는 두 가지를 이미 달성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법도 하다. 얼마 전 미국 샌디에이고의 한 학회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내년에는 가족과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낼 수 있기를 원한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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