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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수도권 신지역주의 낳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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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는 서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25개 구(區)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1987년 이후 대선에서 특정 후보가 서울 전 지역을 싹쓸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23개 구에서 승리했지만 강남.서초구에선 승리하지 못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이번 투표 결과는 천지개벽 수준이다. 가령 2002년 대선 때 관악구에서 노무현 후보는 58.4%, 이회창 후보는 37.2%를 얻었으나 이번엔 그 비율이 29.1%(정동영) 대 45.4%(이명박)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에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12.3%)까지 감안하면 우파 진영의 득세가 뚜렷하다.

전통적으로 서울은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큰 흐름을 좌우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호남 지역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80%가량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서울에선 영 힘을 쓰지 못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과거엔 투표 경향이 자신의 원래 출신지(본적지)와 연동됐지만 요즘엔 지방 출신이라도 수도권의 독자적 정책 이슈를 갖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수도권의 신(新)지역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공시지가 6억원 이상의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일수록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강남구(66.4%).서초구(64.4%).송파구(57.8%) 순이었다. 양천구도 목동 아파트 지역이 위치한 갑구에서 57.1%의 지지를 보냈다. 서울에서 이 당선자가 득표율 1~4위를 차지한 곳이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인 셈이다.

반면 관악구(45.4%).금천구(47.2%).구로구(48.8%).은평구(49.8%) 등에선 1위를 하긴 했지만 득표율은 서울 평균치보다 낮았다.

또 다른 버블세븐 지역인 경기도 성남 분당, 용인 수지, 안양 동안(평촌)에서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훨씬 높았다.

정치권에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노무현 정부의 세금 정책에 대한 반감이 집단적으로 분출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세금이 정권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외국에도 많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소득에 관계없이 똑같이 일정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주민세(community charge)를 90년 도입했다가 2년 뒤 전국적인 항의 시위 속에 정권을 잃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선거운동 때는 "세금을 신설하거나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취임 후 세금을 올리는 바람에 증세 관련 위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국내에서도 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 때문에 민심이 악화돼 유신정권이 몰락했다. 공화당은 78년 12월 실시된 제10대 총선에서 야당에 득표율이 뒤졌고 1년 뒤 10.26 사태가 발생했다.

김정하.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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