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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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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2007년을 돌아보면 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세계경제에서 미국 달러의 세력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유로 등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이 됐다. 경제성장률도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등 브릭스(BRICs) 국가를 비롯해 동유럽과 터키, 중남미 국가 등에 비해 낮다. 더 이상 세계경제의 견인차라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됐을 정도다.

올 8월에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의 추락은 더욱 가속화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미국발’ 금융 위기에 떨고 있다. 2008년은 정확히 10년 전과 닮은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6월 발생한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동남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확산했다. 그해 11월 한국도 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당시 경제 위기의 특징은 미국 등 선진 금융회사들이 대거 한국 재벌에 투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 투자 자금을 동결하는 대책을 세웠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미국의 투자 자금을 떠넘기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한국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은 집에 꽁꽁 숨겨 뒀던 순금 등 귀금속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렇다. 정확히 10년 전 일이다.

그리고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씨티그룹 등 미국의 은행을 아랍에미리트 투자청 등 아랍계 국부펀드가 돕고 있다. 물론 미국민은 한국민과 달리 금반지를 내놓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의 자산을 일찌감치 유로로 바꿔 달러 폭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에는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자국민에 대해서는 큰소리를 치지 못한다.

일본 부동산 거품 붕괴로 세계경제가 비틀거릴 때 미국은 국채를 팔아 위기를 모면했다. 반면 당시 일본 정부는 증세와 긴축정책을 펴 국민에게 고통을 안겼다. 일본 납세자와 예금자가 부담한 손실은 모두 300조 엔(약 2500조원)에 이르렀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규모가 약 30조 엔(약 250조원)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라크 전쟁 비용을 조금 줄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주택대출금리를 동결할 경우 성실하게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신용 좋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내년 초 전 세계 경제 상황은 그다지 밝지 않다.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중국의 수출이 위축되고, 이는 과열 상태인 세계경제에도 타격을 준다. 중국 특수로 되살아난 일본의 경기도 타격을 받을 것이며, 한국도 결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중국은 활황 속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경제는 성장할 것이다. 현재 세계에는 주택 대출과 무관한 6000조 엔(약 5경원)의 자금이 있다. 선진국의 연금·보험·저축 등과 함께 아랍과 러시아, 중국의 잉여자금이 국경을 넘어 투자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돈이 세계경제에 거품을 유발하고 있는데, 부동산·상품·주식·채권 등이 하락하면 일제히 시장에서 빠져나가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닥까지 떨어지면 자연히 매수자가 나설 것이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경제가 악화하더라도 세금을 더 거둬들이거나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 장롱에 쟁여둔 금반지를 팔도록 해서는 안 된다. 거품에 기대 과도하게 투자한 사람들만 손해를 보면 된다. 경제 상태가 어떻게 되든 끝까지 시장원리를 지킨다면 다소 고통스럽겠지만 경제는 회생할 것이 확실하다.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