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방송 겸영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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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8일(현지시간) 동일 시장에서 신문과 방송사의 동시 소유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FCC는 이날 위원 표결을 실시해 찬성 3표, 반대 2표로 신문.방송 겸영을 32년 만에 미국 내 20개 대도시에서 허용하기로 했다.

케빈 마틴 FCC 의장은 "줄어드는 광고.판매 수입으로 곤경을 겪고 있는 신문업계의 생존을 돕기 위해 30여 년간 지속돼 온 낡은 법령을 손질키로 했다"고 밝혔다. 마틴 의장은 "새 법안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의 현실과 여론의 다양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FCC는 2003년 방송사와 신문사의 겸영 금지 규정을 완화하려다 항소법원에서 기각되자 새로운 규정 마련에 노력해 왔다.

법안은 한 지역에서 시장 점유율 4위 이내의 TV 방송사는 신문.방송 겸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여론 독점에 관한 우려 때문이다. 또한 신문.방송 겸영 이후에도 최소한 8개 이상의 언론 매체가 한 지역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20개 주요 지역 외의 소규모 시장에서는 FCC가 심사를 통해 겸영 허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FCC는 이와 동시에 미 전역에서 한 케이블 방송사가 30%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FCC의 이번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법안을 무효화하는 또 다른 법안을 상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백악관은 마틴 의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의회가 이런 법안을 만들 경우 비토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FCC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 신문협회는 "규제 개혁의 정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소비자 단체들은 "미디어 재벌만 키워 지역 언론의 다양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들은 소비자 단체들이 이번 법안에 대해서도 2003년과 마찬가지로 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법원에서 법안의 효력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신문.방송 겸영은 세계적 추세다. 이번 개정 법안 이전에도 미국은 신문과 방송 겸영을 선별 심사로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유일하게 이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1980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여론 통제를 위해 '언론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신문.뉴스통신.방송의 겸영 금지조항을 만들었다. 이를 근간으로 방송법에도 '일간신문.뉴스통신 겸영 법인은 지상파 방송사업과 종합 편성 채널, 보도 전문 편성 채널을 겸영하거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겼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시대에 신문과 방송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새 정부 출범 뒤 '21세기 미디어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겸영 허용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공약을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최지영.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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