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유례없는 압승 요인은 '노무현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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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노무현 5년 정권을 심판했다.그리고 '경제 대통령’을 선택했다.

무수한 악재와 네거티브 공세에 고비고비 휘청거리는듯 했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1987년 이래 가장 압도적인 1·2위 표차로 대통령당선자가 됐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기록했다.15개월간 유지되던 ‘부동의 1위’가 개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는 이명박 후보에 흠이 있더라도 노무현 계승 정권을 탄생시켜선 안된다는 이른바 '노무현 효과'의 결과다.특히 같은 보수 색채인 이회창 후보가 10%대 3위로 밀려난 것은 정권교체를 확실하게 해내야 한다는 유권자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KBS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전체 선거인수의 절반 가량(48.5%)를 차지하는 수도권(서울ㆍ경기ㆍ인천) 지역에서 50%가 넘는 득표로 정동영 후보를 더블 스코어 이상 눌렀다.

유력 후보 3인이 나선 다자(多者) 구도 싸움에서 한 후보가 과반 가까운 득표를 하는 경우는 독재정권이 아니면 유례가 없다.

선거 판세는 이미 수도권만으로도 결정됐던 셈이다.

서울시장과 종로구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이 경북 포항 출신의 이 후보에게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영남지역에서도 압도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특히 이회창 후보가 기대를 걸었던 TK(대구ㆍ경북) 지역에서 70%가 넘는 몰표를 끌어냈다. 이회창 후보가 10%대 득표에 그친데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원 유세가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판도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 왔던 대전ㆍ충청 지역에서 이 후보는 4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했다.이 지역에선 이회창 후보가 2위로 올랐다.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가 나름대로 자기 세력을 확보했음을 보여 준다.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의 연대가 '이명박 대세론'을 깨뜨리진 못했지만 선전은 한 셈이다.

이명박 후보가 충청지역에서 1위를 차지함에 따라 서쪽(충청-호남)은 범여권 , 동쪽(영남)은 한나라당으로 나뉜다는 동서 분열 현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정동영 후보의 대통합민주신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은 더 이상 ‘호남+충청 연합’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게 됐다.

이명박 후보는 그러나 기대했던 호남(광주,전남ㆍ북) 지역에서 두자리수 득표율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호남 지역 유권자의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냉담은 여전했음이 드러난 것이다.대신 호남 유권자들은 전북 출신 정동영 후보에게 80%가 넘는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호남 유권자들은 김대중(97년)·노무현(2002년)후보한테는 90% 넘는 지지율을 보냈었다.

이명박 후보의 전체 득표율은 선거 막판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보다 다소 높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16일 광운대 ‘BBK 이명박 동영상’ 파문이 오히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한 이 후보 지지층을 결집시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동영상 파문이 터지고 거기다 반(反)이명박 정파 연합으로 '이명박 특별검사법'까지 이튿날 통과되자 이 후보 지지층 사이에 위기의식이 퍼지면서 이들이 선거날 대거 투표장에 몰려갔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표심에 대해 노무현 학습효과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저항투표’였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분노하고 있던 유권자들이 노 정부와 가장 먼 대척점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노 대통령이 싫어서 이 후보를 찍은 사람이 많다”며 “현정부가 집값 폭등등 경제 현안에 대해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국민들 사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도 “진보정권 10년을 경험해 본 국민들이 정권교체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른 대안을 찾으려 했고, 그 욕구가 이 후보 지지의 바탕이 됐다”고 해석했다.

‘노무현 학습효과’는 노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2년 대선과는 정반대 상황을 만들었다.

2030 (20대~30대) 인터넷세대가 온 라인과 오프 라인을 넘나들면서 변혁을 주도했던 2002년과 달리 2007년엔 5060(50대~60대) 중심의 보수 기성세대들이 광장으로 몰려 나와 세 결집을 주도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번엔 2030도 ‘실리투표’ 성향을 보이면서 당장 자신의 생활 문제를 해결해줄 능력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 개인의 상품성에서 대선 승리의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가 2007년 국민이 원하는 ‘시대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평가들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역대 대선에선 도덕성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지만 이번 대선은 경제로 집중됐다”며 “이 후보가 경제와 추진력이란 이미지를 선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反) 노무현 정서가 강하고 합리적인 경제 관심층인 수도권 40대의 생각과 이 후보의 탈 이념적 실용주의가 딱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강원택 교수는 “5년전의 ‘김대업 학습효과’로 네거티브가 통하지 않았다”며 “국민들은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정욱ㆍ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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