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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클로즈 업] 역술계의 '빅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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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스리(Big 3)가 있었다. 다른 분야는 다 빅 스리가 있는데, 역술계라고 해서 어찌 없겠는가?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1920 ~ 1983),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1903 ~ 1992),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1935 ~ 2000)이 바로 그들이다. 나는 이 세 사람을 근래 한국 명리학의 3대 스타로 생각한다.

자강 이석영은 '사주첩경(四柱捷徑)'(전6권)이라는 명저를 남겼고, 도계 박재완은 무욕담백한 인품을 통해 명리학자의 품격을 끌어올린 인물이었고, 제산 박재현은 좌충우돌과 종횡무진의 삶을 살면서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한편의 드라마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같은 명리학을 하면서도 서로 주특기가 달랐고 인생행보도 달랐다. 팔자가 다르므로 행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제산의 인생행보는 앞에서 소상하게 다루었으니까 생략하고, 이번에는 자강 이석영과 도계 박재완을 이야기해 보자.

먼저 자강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그는 '사주첩경'이라는 명저를 남기고 갔다. 사람이 죽을 무렵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을 황홀하게 했던 로맨스 건(件)수이고, 다른 하나는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인생무상을 그나마 위로해 주는 양념인 것이다. 자강은 '사주첩경'이라는 명저를 남기고 감으로써 태어난 보람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사주첩경'은 명리학계의 '동의보감'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주 공부를 하려면 중국의 원전에 매달려야만 하였다. 중국 원전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면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

이뿐 아니라 연습문제도 수백년 전의 명.청대 사례이므로 현장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그런데 '사주첩경'은 이 문제를 모두 극복했다.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어 한문 원전보다 한결 쉽다. 책에 소개되는 연습문제도 60, 70년대를 전후한 한국 사람들의 팔자를 분석한 것이라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등장함으로써 한국이 중국 의학에서 독립할 수 있었듯이, '사주첩경'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명리학계는 중국에서 어느 정도 지적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독립을 해야 로열티를 물지 않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도 '사주첩경'의 신세를 많이 졌다. '사주를 이렇게 보는 것이구나'를 알게 해 준 책이 또한 '사주첩경'이었다. 다른 사주 원전들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사주를 해석하는 실전 감각을 익히기가 어려웠다. 핵심 노하우는 빼놓았던 것이다. 하기야 자기의 장사 밑천(?)을 대중에게 쉽게 공개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확도는 복채에 비례하는 법이다. 복채도 안 내고 단지 책 한권 구입해 사주 공부를 끝내 버리면 도사는 밥 굶기 십상이다. 이석영은 수십년 동안 읽은 중국 원전과 바닥에서 갈고닦은 실전 노하우를 소화해 자신의 책에다 대부분 공개하였다.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사주첩경'에서 배운 초식을 한가지 소개하면 이렇다. 태어난 날짜가 육십갑자로 따졌을 때 병신(丙申)에 해당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이석영의 사례 분석에 의하면 병신일에 태어난 남자들은 확률상 집 바깥의 다른 여자에게서 자식을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런가. 병(丙)에 대해 신(申)은 재물도 되고, 여자도 된다. 병은 화(火)에 해당하고, 신은 금(金)에 해당한다. 화극금(火克金)의 관계다. 자기가 이겨 먹는 것(극하는 것)은 재물도 되고 여자도 되는 것이다. 사주에서는 재물과 여자를 같은 것으로 본다. 두 가지 모두 자기가 쟁취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재물이 없는 사주는 여자도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 신이 문제다. 신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역마살(驛馬煞)에 해당하기도 한다.

재물과 여자가 역마살에 붙어 있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재물을 모으거나 아니면 여자를 만난다고 본다. 기차 타고 가다가 우연히 옆에 앉았던 여자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병신일의 남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외국 여자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 속에 물(水)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수는 화에 대해 자식으로 작용한다. 수는 화를 이긴다. 사주에서는 자기를 이겨 먹는 대상을 자식으로 본다. 신금(申金) 속에는 임수(壬水)가 숨어 있고, 이 임수가 병에 대해 자식으로 작용한다.

종합하면 외국 출장 나갔다가 우연히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자식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병신일에 태어난 남자가 그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사주첩경'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병신일에 태어난 남자는 로맨스를 조심해야 한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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