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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영의 DVD세상] '참을 수 없는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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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아무리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신성한 결혼의 맹세는 어마어마한 위자료 앞에서 휴지 조각에 불과할 뿐. 그녀에게 결혼은 위자료라는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복권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남자의 사정은 또 어떠한가. 이혼 전문 변호사인 그는 상대가 제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를 가졌어도(비디오 테이프나 사진 같은) 화려한 언변과 능수능란한 거짓말로 상황을 1백% 뒤집는 역전의 명수다. 남 속이는 일과 결혼 파탄 내는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두 남녀가 만난 것이다.

다른 일도 많을 텐데 하필 사랑에 빠졌단다. 하여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는데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를 속고 속일 수밖에 없다. 평생 믿지 못할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바로 코언 형제의 '참을 수 없는 사랑'이다.

대부분의 코언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극장에서는 별반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처럼 대중성은 없어도 꾸준한 열혈팬을 거느리고 있는 감독들에게 DVD는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매체다. 이들의 전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역시 스크린에서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지만 흑백과 컬러 버전을 동시에 수록한 특색 있는 DVD로 거듭나며 주목과 성공을 거둔 전력이 있다. 그만큼 개성적인 타이틀은 아니지만 '참을 수 없는 사랑' DVD 역시 코언 형제의 이 기이한 로맨틱 코미디 혹은 사상 최고의 결혼 사기극(?)을 최소한 2%는 더 즐길 수 있도록 보증한다.

1.85대 1의 화면비를 지원하는 영화는 전체적으로 고른 화질을 보여준다. 황갈색의 따스한 톤은 고전 할리우드 장르 영화를 연상시킨다. 사운드는 5.1채널은 물론 과분(!)하게도 DTS까지 수록하고 있다. DVD 서플먼트 중 짧은 제작 다큐멘터리인 '어 룩 인사이드(A Look Inside)'에 수록된 감독 형제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영화는 '냉혹한 여자와 멍청한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할리우드 고전 장르를 이리저리 비틀고 뒤집는 것에 이력이 난 형제답게 영화는 고전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와 필름 누아르의 팜므 파탈(요부), 엎치락뒤치락하는 슬랩스틱 개그까지 1930~40년대 할리우드의 다양한 장르들을 하나로 모았다.

거만한 미소와 미모로 남자들을 속여내는 '냉혹한 여자' 매를린(캐서린 제타 존스)은 치명적인 여인, 곧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사랑 때문에 일급 변호사에서 '멍청한 남자'로 곤두박질한 마일스(조지 클루니)와 그녀가 벌이는 설전은 후벼파는 듯한 대사에서 유래한 '스크루볼 코미디'의 그것이다.

의상 디자인에 관한 짧은 다큐에서도 클루니의 의상과 캐릭터는 40년대 케리 그랜트를 참고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제 아무리 '어울리지 않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는 듯 보여도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코언 형제의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즈니스와 다름없는 결혼을 비웃고 비트는 대사로 가득 찬 영화는 결국 최후의 승자는 로맨스가 아닌 돈이라고 말한다. 사랑으로 결합한 그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남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내고 돈을 버는 TV쇼 '딱 걸렸네'였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건 스크루볼 코미디, 혹은 로맨틱 코미디의 탈을 쓴 심술궂은 코언표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모은영 DVD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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