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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김경준, 감형 노림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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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경준(41.전 BBK투자자문 대표.구속기소)씨가 18일 "국가적으로 큰 혼란(turmoil)을 야기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A4 용지 절반가량에 자필로 쓴 영문 글을 통해서다. 이 글은 김씨 어머니 김영애(71)씨가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 전달했다.

어머니 김씨는 "검찰 조사실에서 접견 도중 (아들이) 쓴 것"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라가 너무 시끄러워져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과문은 10줄짜리 짤막한 메모 형식이다. 통합신당과 이회창 후보 측을 통해 공개한 기존의 한글 자필 메모와 달리 영문으로 작성했다. 이는 '미국인'인 본인의 의중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과문의 내용은 '더 이상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내 문제로만 법정에서 방어하고 싶다' 등 간단하다. 김씨는 "더 이상의 혼동(confusion)과 검찰과의 오해(miscommunication)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처신하겠다"며 사실상 검찰에 사과의사도 표했다. 김씨는 4일 "한국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살리려 플리바기닝(감형 조건부 협상)을 제의했다"는 한글 자필메모를 공개해 검찰의 회유.협박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날 편지는 검찰의 회유.협박 주장을 일부 철회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씨의 사과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비난하고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구명을 요청했던 기존 태도에서 180도 바뀐 것이다. 최재경(특수1부장) 특별수사팀장은 "김씨가 이번 주 들어 수사검사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성실히 조사에 응하겠다'며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김씨가 자신의 '입 노릇'을 해 온 대통합민주신당과 이회창 캠프 소속 변호사들을 조만간 모두 해임하고 형사사건 변론에만 치중할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편지 내용상 김씨는 자신의 기소혐의(주가조작.횡령.사문서위조)에 대한 법정 변론에 충실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실제 김씨는 이날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와의 관련성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며 "김씨는 귀국 직후부터 자신의 형량에 민감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정치적 논란이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엉뚱한 주장들로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김씨가 감형을 위해 반성문을 쓴 것으로 보인다"며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통합신당 선거대책위원회 최재천 대변인은 "김씨가 검찰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한 것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언.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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