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보는 한국 사람 편견 빗자루로 깨끗이 치울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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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스리랑카인 프레마랄과 동료 외국인 깔끔이들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골목길을 청소하고 있다. [구로구 제공]

16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7번지 골목.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길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외국인들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빗자루로 골목길을 쓸던 프레마랄(38)은 어눌한 한국말로 길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프레마랄은 자발적으로 동네 청소에 참여하는 외국인 깔끔이다. 구로구가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올 5월에 청소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160명의 외국인이 지원해 깔끔이로 활약하고 있다. 구로구에는 2만3000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스리랑카 출신인 그는 매주 두 차례씩 구로구 가리봉동의 주택가 골목길을 청소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 신세였던 3년 전까지만 해도 밝은 대낮에 이렇게 거리에서 당당히 청소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한국 사회에서 사는 만큼 뭔가 봉사할 방법을 찾다가 청소를 생각했지요.”

그가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7년. 산업 연수생 자격으로 경기도 김포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때 닥친 외환위기 때문에 산산이 부숴졌다.

갑작스레 닥쳐온 불경기에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는 결국 불법 체류자가 됐다.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쳤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돈을 떼어 먹는 사람은 물론이고 매를 맞기도 했다. 결국 2005년 1월 불법 체류자 생활을 접고 고향인 스리랑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한국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 외국인 봉사단체가 한국말이 능숙한 그에게 “외국인 근로자 상담사 역할을 해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2006년 12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진 출국했기 때문에 새로 비자를 받는 데 지장은 없었다. 두 번째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에 대한 반감이 생길 법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먼저 한국 사람들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을 위해 거리를 청소하면 외국인에 대한 편견까지 깨끗하게 치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민들이 청소하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때마다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외국인과 주민들의 노력 덕에 5년 연속 서울시가 선정한 ‘맑고 깨끗한 서울 가꾸기’ 최우수 지자체로 뽑혔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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