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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9.남원 추어탕전문"새집" 徐三禮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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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보름만에 두번째로 남원으로 갔다.추탕과 숙회 전문 음식점인「새집」주인 서삼례(徐三禮)할머니를 만나 얘기를 마저 듣기 위해서다.남원 역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내려 택시 기사에게 새집으로가자고 했더니『새집은 남원 사람들보다 외지 손님 들한테 더 잘알려진 갑소』한다.하긴 새집에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단체가 준표창장.감사장이 즐비하다.경북지사 이의근,중앙대 기술경영대학원외식산업경영자과정 일동 등등.이 사실은 徐할머니가 음식 솜씨 뿐만 아니라「경상도.전라도 서로 욕하는 것 그만두기」운동의 눈부신 단기효장(單騎驍將)이기에 성취한 보람이리라.
할머니에게 저번에 왔을 때 張기자가 찍은 스냅 사진을 건넸다.비탈진 남원산성(교룡산성)의 험한 길을 내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내려 오는 사진이다.
『아이고,어쩔꺼나.
댁에 아줌마가 이 사진 보면 오해허겄네.』 세상에,이 자신만만한 계해생(癸亥生)돼지띠 72세의 할머니는 아직도 청춘의 성적(性的)인 경쟁심이 걸린 농담으로 객에게 능청을 떤다.새집 할머니의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리에는「장꽝에 물불은 감잎 날라와/누이는 놀랜 듯이 쳐다보 며/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한 김영랑의 시구절이 한 순간 발그레 떠 올랐다가 떨어졌다.
계절은 숨길 수 없이 이미 겨울이지만 말이다.이 시는 다음과같이 이어져 끝난다.「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것네」.
徐할머니는 온 팔도(八道)에 수양아들 수양딸들이 있다.
『포항 있는 내 경상도 시영딸 집에 오라고 해서 가면 거기 노인들이 모여서 전라도 것들,전라도 것들 하며 욕하는 걸 들어요.나는 그 자리에서 말합니다.전라도 사람이 당신들한테 잘못한게 뭣입니까.전라도 사람이 당신들 입에 밥 들어가 는 걸 못 들어가게 합디까.밤에 신랑 각씨 잠자는 것을 못자게 합디까.전라도나 경상도나 어디가 미운 사람 있고 고운 사람 있소.사람 나름이지.다 풀고 삽시다.이렇게 잘 말하면 전부 잘 알아 들어요.전라도에서 경상도 욕하는 걸 들으면 야,이 잡아 죽일 놈들아,이 놈들아,너거들이 이걸 해결 안하면 너거 손자때가 되면 서로 칼 들고 총 들고 나오게 된다.한국이 이북통일하는 것 찾기전에 한국안에서 먼저 똘똘 뭉쳐 살아라.통일하자고만 밤낮 허면서 우리 안에서는 왜 경 상도 전라도 따지냐.이게 김일성이 시킨 것 아니냐.그러면 나중에는 참 옳소,할머니 말이 옳소,그래요.다 고쳐야지요.金대통령이 들어서고 나서 많이 덜합니다.첫째는 우리 남원이 잘 돼야 허고 둘째는 우리 한국이 잘 돼야 혀요.』 얼마나 분명한 원근법(遠近法)인가.
徐할머니는 신문을 읽을 수 있는 학력이 없다.그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그가 어머니로부터 무시로「머리를 맞아 가며」가장 확실하게 배운 것은 그 가난한 살림으로도 어떻게 하면 가장 깨끗하고 정성 든 음식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 이모 여섯이 다 음식 솜씨가 그만이었어요.외할머니한테배운거였어요.우리어머니가 나한테 가르쳐준 것은 부엌에 들어가면먼저 소매부터 걷을 것,그리고 그릇부터 깨끗이 씻는 것이었소.
』 그의 원근법은 여기서 시작되었으리라.그는 지리산 뱀사골에서열아홉살 처녀로 자식이 넷 딸린 열두살 연상의 같은 돼지띠 남원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그 자신은 불행하게도 자녀를 생산하지 못했다.전실 막내 아들에게 입대 영장이 나왔던 60년대에 자신은 하루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이으면서도 영감을 졸라 관(官)에 돈을 써서 자식을 군대 입영에서 빼낸 일을 나같은 신문기자에게 자랑스레 말한다.
이 할머니에게는 이런 것이 나라의 법을 어기는 일이 된다는 의식이 없다.
한국 기층민의 가장 정직한 원근법에 눈길을 맞추고 따라가면 거기에는 불행히도 아직 나라의 법은 보이지 않는다.나라의 법을사용(私用)하는 사람들이 쳐놓은 전 통 깊은 담장때문에 가려서그럴 것이다.
『영감이 쌀장사하다 망해 남의 빚을 못 갚게 되니께 하루는 누가 우리 영감보고 도둑 놈이라고 욕을 헙디다.아,빚을 갚아야한다.그 후로 이것이 내 소원이 되었어요.나는 빚 갚으려고 일어서서 뛰었소.처음에는 서울로 댕기며 모시 장사 를 혔어요.장사는 잘 혔는데 빚은 늘기만 혔어요.이 남원에서 서봉사라고 사주보는 장님이 있었는데 하루는 친구하고 갔더니 아주머니 손 한번 만져 봅시다,그래 내 손을 이리 저리 만져보고는 하는 말이아주머니 사주와 웃는 목소리와 크고 두꺼운 손을 보아허니 밥장사해야 성공하게 생겼소 합디다.그 사람 말이 밥장사하면 밑에 사람 천명을 거느리게 된다고 혔어요.영감한테 상의했더니 처음에는 이년이 바람났다고 펄펄 뜁디다.
그러다가 광한루 옆 삼거리 싸전에 포장 하나를 얻어 국수장사를 시작혔어요.서른살 나던 해였어요.그때는 내가 퍽 이뻤어요.
「추운 날 뜨거운 물이라도 끓여내면 장 사람들이 다 좋아들 헐것이다」이 생각 뿐이었어요.』 ***“밥장사해야 성공” 徐할머니의 인생은 이 국수 장사 시작후부터 한국의 학교 못 다니고 가난하고 산골에서 태어난 사람의 전형적 성공담(成功談)을 살아왔다는 것이 그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뒤의 내 판단이다.그것은관청에의 저항과 타협의 혼합이다.손님에 게는 정성 든 음식을 손 크게 내놓아 그 소문이 될수록 멀리까지 나게 하는 것이 그의 상술이었다.멀리서 올수록 그가 더 환대하는 손이다.그에게 이밖에 또 하나가 있었다면 그것은 산천(山川)과 절에 드린 그의 축원(祝願)이다.
『전에는 왜 분식날이란게 있지 않았어요.그런데도 분식날 꼭 밥 달라고 오는 것은 즈거들이었어요.다문 다문 콩을 놓은 밥을따땃하니 담요를 덮어 부뚜막에 몰래 묻어 두었다가 관청 손님이찾아 오면 김치에다 은어회 덤썽 덤썽 썰어 내 놓으면 무척 잘먹었어요.이러다가 보건소에 고만 걸렸소.장사도 못허게 하고 나를 잡아 가겠다는 거였어요.내가 욕쟁이잖아.
아무리 욕할 줄 몰라도 그런 때는 욕을 했을거요.야 이 포리새끼들만 버글 버글하고 하면서 악을 썼어요.야 이놈들아,이렇게하고서야 없는 사람 어떻게 사냐,없는 사람 도와 줘야지.만날 찬장에는 영감 빚쟁이가 와서 차압을 붙이지.날 죽이라면서 멱살을 잡고 흔들었소.포리 새끼가 누구겄소.』 내게 수수께끼 놀이하듯 물어 온다.
포리는 파리의 사투리다.
그때 조사 나왔던 보건소 직원을 그렇게 불렀다고 설명한다.그포장이 몇해 안 가서 낡아 안에서 별이 보일 지경이 됐다.누가꾀를 내 가르쳐 주었다.밤사이에 포장 친 안에 다 벽돌을 쌓고슬레이트를 덮은 다음 이튿날 낡은 포장을 벗겨 버렸다.
***파출소에 잡혀가 『포장안에서 새집이 나오길래 그걸 보고는 어찌 좋은지 내가 새집이라고 이름을 짓고 간판을 걸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집 지은 것 때문에 파출소에 또 붙들려 갔소.파출소 마룻바닥에 넘어져 도골 도골 굼부렀어.야,이놈들아 날 죽여라.없는 사람은 구멍난 포장 밑에서 얼어 죽어야 하느냐고 고함을 쳤소.그랬더니 주임이 차석더러 「빨리 내보내 버려」 하고말합디다.실은 그 전날 병아리 한마리 잡아서 술 한상 차려 주임을 대접해 놓았던 거요.』 오늘의 새집 할머니는 이런 곡절을거치고 일어선 것이다.11년전 영감이 별세하기 전에 이미 옛날빚을 다 갚은 후였다.자기는 그 빚을 갚으려고 그때까지의 인생을 살았노라고 한다.지금 내가 듣기에 재미있는 것은 그 영감님은 이런 마 누라에게 돈벌이를 시켜 놓고 자신은 끊임없이 따로각시 오입을 즐기며 살았다는 점이다.
새집 할머니는 늘 남원 잘되게 해달라고 치성과 축원을 드린다.또 재미있는 것은 그가 끔직이 관리를 받든다는 점이다.
날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혼자 걸어서 절에 가 마당을 쓸고물 갈아 떠 놓고 절을 4백번 드리는데 비는 것 가운데 빼놓지않는 것이 남원관리들이 건강하고 더 높이 올라가게 해 주십사하는 것이라 한다.여섯시 반에는 집에 돌아와 집 안식구들을 모두깨운다. 부엌에 나가 할일을 일러준 다음 일곱시에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장보러 나간다.새집에서 쓰는 미꾸라지는 오후에 들어온다.이 집에만 미꾸라지를 잡아다 대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양로원에 1억원 새집 할머니는 내가 대담이 끝났다고 하자 날더러 일어서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신문기자라면 남원와서 꼭 남원산성과 만인의총(萬人義塚)을 참배하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슬쩍 알아 본 것은 할머니 자신은 임진왜란때 이교룡산성에서 있었던 의병들의 전투도,만인의총의 내력도 모른다는것이다.다만 이곳이 훌륭한 곳이고 분향을 올리도록 향과 향로가비치돼 있으니 성금함에 성금을 넣은 후 정성을 들여 향을 사르고 정성껏 묵념을 올리는 것이 그의 일인 것이다.슬쩍 보니 그는 만원짜리 지폐 두장을 꺼내 성금함에 넣는 것이었다.만인의총을 나오며 그는 날더러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화장실에 가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고 그가 다녀온 곳은 관리사무소였다.
『여기 일하는 사람한테 고생한다는 인사말은 하고 가야지요.』그는 남원시내에 있는 자신의 소유 땅 9천평과 현금 1억원을 양로원과 고아원을 짓는 어떤 재단에 기부했다.차가 그 건설현장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 자기 힘으로 하기가 벅차 이 일을 할 수 있는 단체라 믿고 주어 버렸다며 나이보다 훨씬 힘차게 들리는 웃음을 크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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