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天災와 人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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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어도 개미둑 같이 작은 것에 걸려 넘어지기는 일쑤다.그러므로 누구나 피해가 작을 것이라고 가볍게 여기거나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업신여겼다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환난(患難)을 당한 후에 걱정하 는 것은 마치 병자를 죽게 해놓고 좋은 의사를 찾는 격이다.』중국(中國)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안(劉安)이 남긴 철학서『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갖가지 형태의 재난들이 모습을 감추고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다.그 가운데는 지진.홍수.태풍 따위처럼예측할 수 없는 천재(天災)도 있지만 예측이 가능한,그래서 미리 대비한다면 막을 수 있는 재난도 얼마든지 있 다.과학문명이발달할대로 발달한 지금은 천재조차도 그 내습(來襲)을 미리 알아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보편화돼 있지만 어쩐 일인지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예측 가능의 재난,곧 인재(人災)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유안의 말마따 나 가볍게 여기거나 대단치 않은 일이라 업신여기는 탓이다.그래서 천재와의 싸움은 이길 수있어도 인재와의 싸움은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지진.홍수.태풍과 같은 하늘의 재난은 형태가 분명하지만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재난은 미리 방비하지 않는다면 언제,어디서,어떤 형태로 발생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 또한 사람이 인재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 하다.
최근 1~2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무수한 사고들은 마치「인재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듯 각양각색이다.
비행기 사고,열차 사고,다리붕괴 참사,유람선 침몰등으로 육해공(陸海空)을 망라했다는 비극적 우스갯 소리가 흘러 나오더니 이번에는 지하(地下)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하는 새로운 유형의 인재가 발생했다.기막힌 것은 육해공의 사건들이 빈발하자 많은 사람들이「지하는 안전한가」하는 의문으로 도시가스와 지하철의 사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는 점이다.만약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귀를기울이고 사전 점검에 최선을 다했던들 이번 사고는 막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피해자들에게는 도무지「하늘이 무너지고땅이 꺼지는」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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