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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경제 전쟁'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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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제 전쟁이 시작됐다. 15일 오전 인도네시아 발리의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속개되는 기후변화협약 13차 당사국 총회에서 2009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하지만 국가별로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경제 효과가 달라 앞으로 많은 진통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로 3일 시작된 이번 회의는 난항을 거듭하면서 폐막일로 예정됐던 14일을 넘겼다. 유럽연합(EU)이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미국에 교토의정서에 상응하는 감축 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요구를 완화하라고 맞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나머지 쟁점은 모두 타결이 된 상태다. 이에 따라 15일에는 2013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하는 협상 규칙인 '발리 로드맵'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발리 로드맵' 뭐가 담기나=총회에서는 네 가지 분야별로 의견 접근을 이끌어냈다. 첫째는 2013년 이후에는 개발도상국의 감축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으로 이원화해서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둘째는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1990년 대비 5.2% 감축'보다 더 강력한 감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도국들은 국가별로 자발적인 감축 목표를 정하기로 했다.

개발도상국들이 기후 변화로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 평가하고,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해 국제협력을 해나가기로 한 것도 이번 협상의 결실 중 하나다.

마지막은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데 활용할 기금을 확보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개도국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합의했다.

◆큰 차이 나는 국가별 셈법=방글라데시 환경산림부 고문인 초유더리 사자둘 카림 박사는 13일 지난달 15일 들이닥친 사이클론 시드르 피해 현장을 비디오에 담아 회의장에서 상영했다. 그는 "방글라데시 국민은 지구온난화의 무고한 희생자들"이라며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간 145㎏에 불과한데, 선진국 탓에 발생한 온난화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재해 복구 지원을 촉구했다. 오일 달러가 넘치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온실가스 감축으로 유류 소비가 줄면 우리가 피해를 볼 것"이라며 경제적 지원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이번 회의에서 EU가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안을 밀어붙이려 했던 것도 경제적인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방지라는 '환경문제'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미국.캐나다.호주.일본보다 뛰어난 에너지 관련 기술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EU 가입국에는 전력.가전 부문에서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독일, 전체 발전량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풍력발전 기술이 뛰어난 덴마크, 원자력 발전 비율이 70%가 넘는 프랑스가 버티고 있다. 제조업 비율이 17%에 불과한 영국은 금융부문을 통해 탄소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미국.캐나다, 이미 에너지 효율이 높아 온실가스 감축 여력이 별로 없는 일본에서는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경제성장은 그대로 추구하고 대신 배출된 온실가스를 모아서 바다 밑 땅속에 저장하는 것 같은 기술로 해결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2009년까지 교토의정서보다 강력한 감축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집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대표인 외교통상부 최재철 국제경제국장은 "남들이 한국을 개도국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2013년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한국이 의무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도국 그룹에 남아서 자발적 감축을 약속하더라도 2013년 이후 체제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도 한국이 높은 감축 목표치로 솔선수범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토의정서=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제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온실가스 감축 합의문이다. 2008~2012년에 미국을 포함한 39개 선진국이 199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평균 5.2% 줄이도록 했다. 미국과 함께 교토의정서 이행을 거부했던 호주가 최근 비준함으로써 비준국은 175개국이 됐다.

발리=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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