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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절망' 걷어내는 자원봉사의 땀방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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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원유 유출 사고 닷새째인 11일 자원봉사자들이 만리포 해수욕장에 인간띠를 만들어 해안을 덮친 기름을 걷어 내고 있다. 현재 태안반도 일대에는 사고 발생 이후 매일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와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시커멓게 물든 앞바다를 보면서 어민들의 가슴도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희망은 살아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 든 자원봉사자들이 온 몸을 던져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더 걷어내려고 흘리는 땀방울은 어민들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됐다.

의항3리 이완섭 어촌계장은 "이렇게 와서 도와주는 봉사자들의 열성을 봐서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름 방제 작업으로 분주한 11일 오전. 차은영(25.여)씨와 이준석(18)군은 머리에 기름을 뒤집어 쓰고 기름을 걷어내면서 굵은 땀을 흘렸다. 이군이 삽으로 기름을 퍼내 양동이에 넣으면 차씨가 양동이를 들고 옮겼다. 둘은 이날 처음 만난 사이다.

경기도 안산시 와동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차씨는 하루 휴가를 내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이군은 "그냥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만리포로 오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 "'봉사하러 간다'는 말에 반가워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유출 사고 닷새째,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이렇게 만났고, 하나가 됐다.

태안 해경이 이날 집계한 자원봉사자는 만리포에만 2215명이었다. 태안반도 전체로는 5000명이 넘는다.

지역 주민들의 끈끈한 봉사도 큰 힘이 되고 있다. "2시간30분 걸려 충남 공주에서 왔다"는 이춘옥(51)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그와 함께 온 봉사자들은 30명이 넘었다.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이씨는 "'우리 고장 살리자'고 이웃들에게 전화를 해 함께 왔다"고 말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온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구세군과 연합해 급식 봉사에 나선 태안읍 문화봉사단 회원 김진화(49) 주부는 2005년 암수술을 했다. 지난달 배 속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도 받은 김씨는 지난주에 퇴원했다고 한다. 그는 "바다에 나갈 수 없으면, 뒤에서라도 도와야 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임형준 한림대병원 교수는 "원유에서 나오는 유독 물질로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봉사자가 많다"며 "마스크 같은 보호장구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안 피해 갈수록 커져=11일 현재 기름띠는 사고지점에서 남쪽으로 안면도 앞바다 50여㎞, 북쪽으로 가로림만 입구 20여㎞까지 퍼졌다. 충남도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태안 거아도에서 서산 가로림만에 이르는 해안선 167㎞에 산재한 굴.바지락.전복 양식장 3633㏊(7개 읍.면, 324곳) 등이 기름에 오염됐다.

정부는 이날 충남의 태안.서산. 보령.서천. 홍성. 당진 6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한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글=강인식.강기헌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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