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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대국,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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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달 6일 정우택 충북지사가 중국 베이징(北京) 내 5성급 호텔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청주와 베이징 사이에 직항로가 열렸음을 알리는 자리다. 베이징 관광국·관광협회·항공사 관계자와 중국 기자 등 400여 명을 초대한 꽤 큰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정 지사는 “취임 1년 반 만에 12조3000억원의 도외(道外) 투자를 유치했다”며 “내년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기록했던 투자 유치액 14조원도 넘어서겠다”고 장담했다. 다소 노골적인 자랑인데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요즘 어디나 경제가 화두지만 이처럼 유쾌한 사례를 듣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지방관들도 너나없이 경제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엔 중앙의 지시만 잘 따르면 감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젠 실적이 없으면 가차없이 쫓겨나는 것이 민선 자치단체장의 운명이다. 상사 직원과 흡사하다.

그러나 행정 세일즈에선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한국보다 저만치 앞서 있다.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를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칭다오 남쪽 200여㎞쯤에 자리 잡은 르자오(日照)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위도로 보면 칭다오는 군산, 르자오는 목포와 비슷하다. 르자오와 평택 간에 주 3회 정기 여객선이 오간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 르자오 선착장 앞엔 오색 풍선이 현란했다. 현수막과 붉은 아치도 등장했다. 현수막엔 ‘2007년 산둥성에 찾아오신 100만 명째 한국 관광객 환영식’이란 한글이 선명했다. 중·고생 200여 명이 악기를 들고 행사장을 메웠다. 위충(于衝) 산둥성 관광국장과 양쥔(楊軍) 르자오 시장이 꽃다발을 들고 출구 앞에 대기했다. 오후 1시45분, ‘100만 번째 손님’ 임경호씨가 출구를 빠져나왔다. 임 씨는 위 국장으로부터 1만 위안(약 130만원)의 현금 증서와 황금열쇠, 숙박권이 포함된 관광권을 받았다. 임씨는 개선장군처럼 둘러싸여 선착장 밖에 마련된 기념식장으로 안내됐다. 단상에 선 임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한·중 우호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임씨는 겨우 두 번째 중국 방문 만에 친중 인사가 된 셈이다. 산둥성과 르자오시의 행사 준비는 치밀했다. 베이징 내 한국 특파원들을 초청했다. 기자마다 담당 직원을 배치해 세심하게 일정을 관리했다. 서울에서 한국관광협회 관계자들도 불렀다.

이처럼 공을 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관광객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중국의 대외 개방 이래 산둥성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지금까지 모두 200만 명인데 이 중 절반인 100만 명이 한국인이다. 올해 해외 관광객이 산둥성에 푼 돈은 대략 12억 달러(약 1조1000억원)쯤 된다고 산둥성 관광국은 밝혔다. 한국인이 해외 관광객의 절반이니, 단순 계산하면 올해 한국인이 산둥성에서 쓴 돈은 5500억원쯤 된다는 얘기다. 산둥성이 한국인을 상전 대접하는 이유다.

르자오뿐이 아니다. 요즘 중국 소도시의 상당수가 외국 기자들을 부른다. 특히 한국 기자들이 인기다. 마을 단위로 기자를 초청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곤 투자·관광 환경을 알리는 세일즈 프로그램을 잔뜩 풀어놓는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고위 간부가 줄줄이 브리핑도 한다. ‘경제 성장=승진’이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관리들의 집착은 대단하다.

중국만 자본과 관광객을 유치하란 법은 없다. 오히려 이젠 우리가 ‘부자 나라’ 중국의 자본과 관광객을 ‘모셔와야’ 할 때다. 중국의 보유 외환은 1조4000억 달러가 넘는다. 관광 인구도 2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거의 노다지 수준이다. 남은 일은 이 노다지를 긁어 모을 삼태기를 짜는 일이다. 누가 더 크고, 튼튼한 삼태기를 짜는지를 놓고 우리 지자체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진세근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