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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를가다>비하치市서 대학살 소문 흉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유엔이 설정한 6개 안전지대 가운데 하나인 비하치가 세르비아系의 대공세에 밀려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2년7개월째를 맞고 있는 보스니아 내전이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뿌리깊은 민족.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된 세르비아계와 회 교도간의 대립이 끝없는「피의 보복전」으로 확대되면서 주변국과 국제사회로 불똥이 튈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보스니아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본사는 유재식(劉載植)베를린특파원과 김석환(金錫煥)국제부기자를 「유럽의 화약고」보스니아로 급파했다.두 특파원은 국내언론 사상 최초로 전쟁보험에 가입했다.다음은 보스니아로 들어가기 위해 27일 크로아티아 수도자그레브에 도착한 두 특파원이 보내온 1信이다.
[편집자註] 자그레브에 있는 유엔보호군(UNRPOFOR)사령부측은 비하치 함락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공군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계는 유엔이 설정한 안전지대 비하치를 향해 최후의「목조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비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보스니아정부군 제5군단이 곧 궤멸되고 비하치가 결국 세르비아인들의 손에넘어갈 것이라는 점이다.역설적인 얘기지만 그때 가서야 비하치에잠시나마 평화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유엔보호군 사령부에서만난 알렉산드르중위(36.러시아군 출신)는 이렇게 말하면서 비하치 함락은 새로운 사태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먼훗날 내 아들이 유엔군 소속으로 다시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지도 모른다』며어깨를 으쓱한 그는 도대 체 해결책이 없는 것이 보스니아 사태라고 말한다.
자그레브 공항에서 호텔까지 우리를 태워다준 크로아티아인 택시운전사는 나토와 유엔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다.『유엔과 나토가협력하기는 커녕 서로 탁구를 치고 있어 보스니아사태가 이 지경이 됐다.
유엔과 나토는 보호(protect)와 방어(defend)양쪽모두 실패했다.』그러나 그는 비하치사태에 대해『세르비아인과 회교도가 싸우든 말든 알바 아니다』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남의나라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지난 91년6월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선포를 계기로세르비아계가 주축이 된 유고연방군과 이들 두나라 사이에 전쟁이터졌을 때 긴장이 감돌던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불과 남쪽으로 1백50㎞ 떨어진 보스니아의 비하치에서는 대학살 소문이 나도는등 극도의 불안감이 전해져 오고 있다.7만명의 회교계 주민들은 세르비아계에 의한 인종청소를우려하고 있고,1천2백명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파 견 유엔군도 발이 묶여 있는 처지라고 유엔사령부 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2만4천명에 달하는 유엔보호군의 생명을 걱정하는 프랑스와 영국등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이미 철수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3천6백명의 병력을 태운 美함정 3척이 크로아티아 해안으로 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유엔측은 설명하고 있 다.
지난달 대대적인 역공으로 세르비아계에 일격을 가한 보스니아정부군 제5군단은 한때 2만명을 자랑하던 병력이 지금은 거의 와해돼 마지막 4백여명의 병력이 비하치를 사수하고 있다.
사라예보의 상황도 갈수록 험악해 지고 있다.27일에도 5발의박격포탄이 떨어져 비상경계령이 발표되고,곳곳에서 저격수가 날뛰고 있다.내전의 현장 보스니아에서 시시각각 자그레브로 전해져 오고 있는 소식들은 최악의 종말론적 상황을 예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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