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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후보들 '인간성' 세일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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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공화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선 후보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고교에 다닌 그는 10대 때 백화점 'JC 페니'에서 출입문의 때를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많은 고객이 문에 손자국 등을 남길 때마다 쉴새 없이 지워야 했다. 그것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지금도 "유리문을 보면 손잡이를 잡고 유리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고 그는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사람 좋다는 인간성 세일즈에 나선다.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자라면서 궂은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런 그에게도 잊기 어려운 아르바이트의 기억이 있다. 그는 1969년 여름 명문 웨슬리대학을 졸업하고 알래스카를 여행했다. 그때 그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발데스의 한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연어 내장을 따는 일을 했다. 그는 회고록 '살아 있는 역사'에서 그 시절을 이렇게 소개했다. "연어의 피로 발갛게 물든 부두 안에서 높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숟가락으로 내장을 제거하는 일을 했다. 감독관은 늘 나의 손놀림이 빠르지 않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다 연어를 통조림통에 담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상한 연어를 발견하고 보스에게 보고했더니 곧바로 나를 해고해 버리더라."

힐러리를 위협하고 있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학에 다닐 때 건축 공사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직물 노동자의 아들로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민주당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고교 시절부터 직물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화당의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도 신발.의류가게와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다. '아메리칸 모터스'를 경영했고, 미시간 주지사를 지낸 아버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란 공화당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삼촌의 농장 하수관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파이프를 자르는 작업을 잠시 했다고 한다.

AP통신은 이들 대선 후보에게 학창 시절 무슨 공부를 잘했고, 못 했는지 물었다. 힐러리는 "역사를 좋아했지만 수학은 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오바마는 "하버드대 법학대학원을 우등 졸업했으나 8학년(중2) 때 프랑스어 과목에서 D학점을 받았다"고 했다. 에드워즈는 "최고는 영어였고, 최악은 화학 과목이었다"고 밝혔다.

공화당 선두주자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법과대학원에서) 헌법과 계약법 성적은 좋았으나 세법 점수는 나빴다"고 말했다. 허커비는 "토론 과목에서 A플러스 학점이 나왔지만 9학년(미국의 경우 고1) 때 수학의 대수(代數)에선 C를 받았다"고 했다. 해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포로가 돼 고문까지 당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좋은 점수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롬니는 "A부터 F학점까지 다 있으나 A가 F보다는 많다"고 했다.

숨은 재능과 나쁜 습관에 대해 힐러리는 "단어 퍼즐 맞추기를 잘하나 초콜릿을 좋아하는 게 문제"라고 소개했다. 오바마는 "포커에 재능이 있지만 블랙베리(휴대전화와 개인휴대단말기(PDA)의 장점을 합친 스마트폰)가 있는지 늘 챙기는 건 나쁜 습관"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물음에 힐러리는 "대학이나 재단을 설립하는 등 대의명분이 있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오바마는 건축가, 에드워즈는 직물공장 책임자라고 했다. 줄리아니는 스포츠 경기 중계 아나운서, 허커비는 순회 공연하는 록 밴드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 롬니는 자동차 회사 경영자, 매케인은 외교관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9일 대학생 시절 반전운동을 한 힐러리가 해병대에 입대하려 자원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 직후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직전 가을이다. 아칸소주 모병 사무소를 찾았으나 당시 법대 교수인 징병관이 안경을 쓴 힐러리에게 "나이가 너무 많고, 시력이 좋지 않고, 여성 아니냐"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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